매일신문

"안심대출 제외? 정부 믿었던 서민은 뭐냐"

고정금리 대출자 등 제도 보완 촉구

지난 2013년 7월 아파트를 구입하며 은행에서 1억5천만원을 대출받았던 안형진(가명'39) 씨는 요즘 속이 타들어간다. 불경기로 한 푼이 아쉬운데 대출이자를 줄일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게 생겼기 때문이다. 안 씨는 대출 당시 연리 4%의 고정금리'분할상환(10년 만기)을 선택했다.

대출 시점부터 만기까지 매월 원금과 이자를 조금씩 갚아나가는 방식. 안 씨는 '변동금리'만기상환의 경우, 금리인상 및 주택가격 폭락 등 급격한 경기변동시 가계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고정금리'분할상환을 선택하라'는 정부의 권유를 철석같이 믿었다.

정부가 가계부채 안정화를 위해 변동금리 상품을 고정금리 상품으로 전환하도록 시중은행을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심전환대출(대출금리 2.6%) 신청대상에서 고정금리'분할상환 이용자는 제외됐다. 안 씨는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정책을 따른 사람만 바보가 됐다"며 "연간 이자 210만원, 10년이면 2천만원 넘는 돈을 날린 셈"이라며 한숨지었다.

'미친 전세난'을 참다못한 주부 권은희(가명'41) 씨는 지난해 10월 큰마음을 먹고 집을 샀다. 2년마다 짐을 싸고 집주인이 보증금 올릴까 봐 눈치 보는 일도 견디기 힘들었다. 더 이상 전셋집은 구할 수도 없었다. 네 식구가 살 작은 집을 사느라 저축은행에서 1억원(대출금리 4.4%)을 빌렸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 월급으로 빠듯한 살림을 꾸리다 보니 은행 문턱은 높기만 했다.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려고 했으나 분통만 터졌다. 권 씨는 "우리 집 한 달 소득이 220만원인데, 안심대출로 갈아타면 연간 170만원의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나마 은행 문턱을 넘은 사람들은 형편이 나은 게 아니냐. 정부가 누구를 도와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말만 들었다가 손해를 본 금융소비자들이 속을 끓이고 있다. 안심전환대출 대상자에서 고정금리'분할상환 상품 이용자, 2금융권 대출자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비중은 2011년만 해도 3%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말 23.6%로 치솟았다. '착한 금융 소비자'들이 정부 말만 믿고 고정금리 상품을 택한 결과다.

이런 불만에 대해 금융당국은 그저 양해해 달라며 달래기에 급급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상대적 불이익에 대한 불만을 알고 있지만 안심전환대출의 목적은 금리 인하가 아니라 가계부채 구조개선이다. 고정금리 대출자로 확대하면 제도 도입의 취지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가계부채의 뇌관인 저소득층 문제도 간과했다. 안심전환대출 신청자들의 평균소득은 연간 4천100만원으로 중산층이 수혜대상이다. 소득 하위 20%인 소득 1분위는 이미 빚에 짓눌려 원금상환 형식의 안심전환대출은 언감생심이다. 특히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저소득층 대출자(저축은행, 보험사 등 2금융권)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문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저축은행'신협'상호금융'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95조237억원에 달한다.

한편 안심전환대출을 둘러싼 불만이 폭발하자 정치권이 나섰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형평성'을 고려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원리금 상환능력이 있는 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서 "당정 간 깊이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고금리로 제2금융권 대출을 받은 사람,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신혼부부, 1인 가구 등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자들은 신용등급이 낮거나 여러 곳에서 돈 빌린 진짜 서민이 대다수"라며 "이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유광준 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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