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훈민정음 해례본의 행방과 안전 확보가 우선이다

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주의 배모 씨 집에 느닷없이 화재가 발생했다. 배 씨는 자신의 집에 불이 나고 보관 중이던 고서적 등이 전부 타버렸는데도 해례본의 피해 여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문화재청이 현장 감식에 들어가자 그는 누군가에 의한 방화 가능성과 함께 해례본 일부의 도난을 언급했다.

이 과정에서 배 씨는 해례본 일부는 외부에 숨겨뒀고 일부는 낱장으로 포장해 불이 난 고서적 보관방에 놔뒀다고 털어놓았다. 항간에 나돌던 해례본 낱장 분리 은닉설에 신빙성을 더하는 대목이다. 배 씨는 2011년 8월 자신이 해례본 절도 혐의로 경찰에 연행될 때 방안에 해례본 일부가 있었는데 문화재청이 알고도 모르는 체 했다는 둥, 해례본을 훔쳐간 사람이 불을 질렀을 것이라는 둥 앞뒤가 안 맞는 말로 사태를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과 문화재청 관계자는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해례본을 영원히 숨기려는 배 씨의 연막전술이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아무튼 지난 2008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는 주장이 처음 제기된 후 수년이 지나도록 그 실재나 행방을 찾지 못한 채 한 개인의 언행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상주해례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훈민정음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판본이라는 점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간송미술관 소장본과 같은 판본이면서도 가치는 더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문화재가 실재 소유권도 없고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 없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방치된 셈이다.

만에 하나라도 소실되거나 밀반출이라도 되었다면 그 국가적'국민적 손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간의 복잡한 사연을 감안하더라도 국보급 문화재를 이토록 무방비로 내버려둔 것은 문화재 당국의 책임이다. 당장은 해례본의 행방 파악과 안전성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 씨를 상대로 가능한 압박과 설득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해례본부터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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