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수필2] 내 인생에 값진 보석

장명희(대구시 달서구 성서서로)

'삶' 단순함,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눈을 비비고 새벽 창을 두드리면서 나를 재촉해 보았지만 항상 그 자리 그 마음이었다. 이런 똬리를 튼 뱀처럼 얽매인 것을 어떻게 풀어갈까? 나의 화두였다.

그래 내 마음을 환기시켜보자.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는지라 어른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길 가는 연세 많으신 어른들이 항상 눈 속에 꽉 메워 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나와의 자문자답이었다.

'독거노인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초대받는 일은 축복받은 일인 것 같았다. 첫 방문지는 산 밑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와의 인연이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대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다. "새댁을 기다리고 있었네." 웃으시면서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 가슴에서 젖어오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주름진 손에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순박한 정이 묻어났다.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왠지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인생 이야기, 할아버지, 자식을 먼저 보내시고 혼자 사는 삶의 고독감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오고가는 풋풋한 이야기 속에서 세상은 어쩌면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꽃 사이로 피어오른 거친 피부는 할머니의 고단한 삶의 여정 같았다. 훌훌 겹겹이 입은 옷을 벗기면서 나약한 몸에서 나 자신의 미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따뜻한 욕탕에 할머니를 담갔다. "아휴, 시원해" 하시는 말씀 속에서 내가 왠지 속이 후련했다. 할머니의 등을 밀어 드리면서 마음속에 쌓인 앙금을 걷어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행하는 기분도 들었다.

길다란 손톱도 예쁘고 정갈하게 다듬어 드렸다. 방안 분위기를 좀 젊고 발랄하게 해드리기 위해 장미꽃을 몇 송이 침실 곁에 꽂아 드렸다. 방안은 할머니의 황혼의 아름다운 빛과 함께 막 피어나는 인생의 꽃과 같았다.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자꾸 스쳐 지나갔다. 세상 할머니는 모두 우리 어머님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장을 가서 간단하게 식자재를 샀다.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쇠고기국을 정성껏 끓였다. 같이 마주하면서 먹는 밥상은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 맛있게 잡수시는 모습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면서 좋아하던 어린 시절 그 느낌이었다.

할머니와의 하루, 뭔가 함께 나눌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할머니께서 "감사하다" 라고 하시는 말씀은 되돌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루를 봉사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다는 기분이었다. 물질적으로 살 수 없었던 아름다운 마음의 풍요로움이었다. 나도 누구와 공유할 수 있고 더불어 살 수 있음에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삶의 단조로움도 나눔으로써 여유로움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할머니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인생의 보석을 찾은 것 같았다. 이제는 영원히 할머니와 함께 친구, 어머님, 동반자로 남겠다고 나와의 굳은 약속을 해본다. 앞으로 모든 어른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할머니의 주름살만큼 진한 삶의 향기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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