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지금 은퇴한 지 3년째 되는 62세 남자입니다. 직장 생활하는 30여 년을 여유없이 삶의 틈바구니를 비집으며 살아온지라 은퇴 후 경제적으로는 다소 풍족하지 못하더라도 휴식과 함께 삶의 여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가족들에게도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소홀했던 점들을 채울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늘 늦은 귀가에 투정을 부리던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설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완전 빗나갔습니다. 아내는 거의 매일 외출을 합니다. 취미생활도 같이 하면서 알콩달콩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은 그저 저만의 희망사항이 됐습니다. 아내는 결혼한 딸이 가까이 있어 가끔씩 손녀를 돌봐주느라 집을 비우고, 동창모임에다 고향친구 모임, 봉사활동 등 모임이 많아 집에 붙어 있지를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는 매일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제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 그동안 내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하는 회한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아내는 적반하장입니다. '외출이 잦다'는 저의 말에 '잔소리를 한다'며 이제는 저와 마주앉아 얘기하는 것도 불편해 합니다. 지금 냉전 중입니다. 집에서 혼자 점심을 챙겨 먹는 것도 서글프고, 주변의 산에 혼자 등산을 가는 것이 초라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이제 시간이 많아 그동안 하지 못한 취미생활도 아내와 같이 하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몇십 년을 살았나는 생각이 들어 너무 힘이 듭니다.
■해법=30여 년간 중견기업에서 일하시면서 5년간은 임원으로 지내다 퇴직을 하셨다니 그동안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을 하셨고 또한 열심히 살아오셨군요. 그리고 은퇴 후에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가족들과의 시간도 늘리고 그러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상상하셨는데 아내는 바쁜 일상으로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해 많이 힘들어 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은퇴 후 은퇴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배우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은퇴 이후의 행복한 생활은 부부생활의 만족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들은 은퇴하면서 권위와 명예, 사회적 지위를 모두 상실하고 마치 삶이 끝난 것 같은 절망감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후유증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집보다는 직장 등 외부생활에 중심을 두고 살았다는 증거이겠지요.
남편은 은퇴 후 아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만 아내는 자녀와 친구를 남편보다 편하게 여깁니다. 노년기 여가생활을 함께할 사람으로 남자는 배우자를 가장 선호하지만, 여자는 자녀나 친구를 선호한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은퇴 후 가장 친밀하다고 느끼는 대상도 남자는 배우자인 반면 여자는 자녀라고 합니다. 또 자신이 아플 때 간병해 줄 사람으로 남자는 아내를 원하지만 여자는 자녀나 전문 간병인을 남편보다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사회에서는 남녀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살아갑니다. 위의 내담자의 아내도 젊은 시절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지금 내담자가 꿈꾸는 알콩달콩 사는 꿈을 수없이 꾸면서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남편의 관심이 가장 필요하던 출산과 육아기간 동안에 외롭게 보내던 아내는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남편을 기다리지도, 알콩달콩 살아가는 꿈도 꾸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부관계의 회복과 외롭지 않은 은퇴생활을 위해 은퇴한 남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기의 역할을 빨리 찾는 것입니다. 단순히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전통적인 가장이 아니라, 아내에게 편하고 좋은 친구로서, 자녀들의 멋진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아내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통해 서로 정서를 확인하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은퇴 이후에도 가족들과 무난하게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가장의 권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 하는 것을 원칙으로 청소도 하고, 간식도 만들고 때때로 직접 요리를 하여 아내와 가족들을 기쁘게 해줍니다.
셋째, 서로가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나 종교생활, 운동 등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부부가 여가를 함께 보내는 것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여가 및 종교생활을 함께 하는 부부들은 부부관계가 안정적이고 결혼생활에 관한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집에 살면서도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던 부부가 은퇴 이후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게 되면서 이전에는 겪지 않았던 갈등을 겪게 됩니다. 아내에게도 나름대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남녀 간에는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기를 권합니다. 한편으로 지금부터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찾는 것도 함께 병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원봉사나 취미활동, 인간관계를 넓히는 등의 노력들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와 모든 것을 같이 해야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가족이란 '따로 또 같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할 것은 함께하고, 따로 할 것은 따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정순(한국은퇴연구소 전문위원, 대구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