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아내만 없으면 결혼 생활도 할 만한데…."
지난 토요일 오전 9시쯤. 아내를 직장 야유회에 데려다 주고는 아침 끼니 해결을 위해 집 앞에 찾아온 친구가 뱉은 말이다. 결혼 3년차인 이 친구는 함께 뼈다귀 해장국을 먹는 내내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직장에서는 월급의 노예, 가정에서는 가사 도우미. 이런 게 '유부남의 삶'인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면서. 철딱서니 없는 소릴 하는 친구에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다"며 "결혼 생활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고 달랬다. 그러자 그는 "주말에 같이 영화도 보고, 함께 침대에 누워 모바일 게임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좋은 점도 있지. 그런데 얘가 집에 안 가잖아"라고 했다. 결국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유의 말을 숱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너한테 이런 말이라도 하지. 어디 가서 이런 소리 하면 흉보거든."
갓 자대배치 받은 이등병 시절, 군대식 표현으로 '각 잡고' 앉아 있던 중 한 선임병이 늘어놓는 불평이 귀에 들렸다. 흘깃 눈동자를 굴려 소리가 난 방향을 보니 당시 상병이었던 한 선임병은 경계 근무 나갈 준비를 하면서 "근무만 없어도 군 생활 할만한데"라고 투덜거렸다. 자대배치 받은 지 14일이 지나 나도 경계 근무를 나가면서 그때 그 선임이 한 말이 귀에 선했고, 입에 맴돌았다. 그리고 처음 기자가 됐을 때, 기자 선배들은 종종 "기사만 안 쓰면 기자가 참 좋은 직업인데"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한 선배 중 자신은 기자가 되고 싶어 '언론고시'에만 매진했노라는 선배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왜 저런 말을 할까?'라는 의아함이 있었지만, 기자 생활을 하다가 보니 선배들이 어떤 마음에서 한 말인지 그 뜻을 이해하게 됐다.
세 이야기의 공통점은 본질에 대한 회피이자 부정이다.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남녀가 한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과정이 순탄할 리 만무하다. 언제 있을지 모를 적에 대비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군인의 숙명. 그 무게가 결코 가벼울 리 없다. 기자가 글을 쓰는 게 업이라지만 매일 글을 쓰는 게 쉬울 리 없다. 더욱이 글은 자신을 보여주는 창인데, 매일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밥값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렇게 넋두리하던 친구는 '이혼'이란 단어를 여태껏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 시절 그 선임은 물론이고 그 말이 입에 맴돌았던 나도 경계 근무를 이탈한 적이 없다. 선배 기자들은 아직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곤 하지만 기사 마감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 밥값 하고 살기 어려운 세상, 친구가 마지막에 한 말처럼 철딱서니 없는 푸념이라도 털어놓을 해방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힘이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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