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한성의 새론새평] 60년 만에 이룬 배우의 꿈

서울생. 서라벌예술대 방송과 1년 수료.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생명나눔 친선대사
서울생. 서라벌예술대 방송과 1년 수료.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생명나눔 친선대사

영화 사랑한 엄마 덕에 영화얘기 푹 빠져

중학생 때 "영화배우 되겠다" 첫 결심

임권택 감독 102번째 영화 출연 영광

작은 역할이나 꼭 필요한 존재 되고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 위에 서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캐스팅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도 그런 익사이팅한 마음으로 이달 6일을 기다리고 있다. 임권택 감독님의 102번째 영화 VIP시사회에 출연배우로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광적이었던 60년 만의 캐스팅이다.

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도 어려서부터 광적으로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 가장 미국적인 배우라는 게리 쿠퍼를 흠모했는데, 1961년 그가 세상을 떠났다.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 금식은 물론 학교도 가지 않았다. 게리 쿠퍼의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이기에 상중이라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지금도 명문인 서울여상 학생이었던 우리 어머니도 영화 마니아였다. 의 클라크 게이블이 심벌 남성이었다.(여성 팬이 많았던 그는 실상은 시가 중독으로 담배를 많이 피운데다 의치여서 구취가 심했다고 한다. 스칼렛 오하라 역의 비비안 리는 그와의 키스장면을 끝내고 나면 기절할 것 같다며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요즘도 여배우들 중에 상대 남성과의 키스신이 부담스러워 촬영 전 마늘을 조금 먹기도 한단다. 그러면 오래 뽀뽀하지 않는다나?

어쨌든 난 영화를 사랑했던 엄마 때문에 어릴 때 동화를 들은 것이 아니라 영화 얘기에 빠져들었다. 배우들의 성공 스토리도 들려주었다. 당대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 배우 타이론 파워의 데뷔 에피소드는 단편 영화 같았다. 어느 날 미국의 영화관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영화를 보는 도중 누군가 스크린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범인은 휴가 나와 연인과 영화를 보던 타이론 파워라는 병사였다. 영화 속 범인이 교활하고 비열하게 계속 도망치는 것에 분노해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다. 어이없는 해프닝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그 병사가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 청년처럼 완벽한 미남이어서 영화배우로 전격 픽업됐다는 것이다.

나의 픽업은 2년 전 임권택 감독 데뷔 50주년 기념행사 사회를 본 것이 행운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죠"라면서 내 얘기를 했다.

"배우로 성공하려면 시나리오를 많이 보라는 글을 보았다. 시나리오는 어디 있나! 충무로 스타다방이었다. 학생은 들어갈 수 없는데 나만 한 애가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구두닦이 보조였다. 그렇게 구한 영화대본을 읽다가 난 부르르 떨었다. 소년 병사가 나오는데 내가 하면 잘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역할을 시켜달라고 영화사에 보낼 편지를 썼는데 문제는 삐뚤빼뚤 엉망인 내 글씨였다. 우리가 살던 달동네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른이 많지 않았는데 우리 어머니는 글씨도 잘 써서 동네 분들이 대필을 부탁하곤 했다. 엄마가 정성의 편지를 보내서였을 것이다. 며칠 후 사진을 보내 보라는 답장이 왔다. 설레고, 흥분되고 어리벙벙했다. 변변한 옷은 아니었지만 빨아서 다려 입고 빌린 돈 꼭 쥐고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10여 일 후 답장이 왔다. 답 글은 단 한 문장. -본 배역과 맞지 않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1962년 임권택 감독님의 데뷔작 였습니다"하며 내 이야기를 끝냈다.

함성과 박수와 웃음이 쏟아졌다. 임 감독님 부인이신 채령 여사님이 50년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니 기특하다시며 신랑께 바로 얘기하셨다.

"다음 작품에 꼭 출연시키세요. 안 그러면 혼날 줄 알아요."

첫 촬영 날 남양주 영화스튜디오로 가면서 난 계속 대사 연습을 했다. 세계적인 배우 알파치노도 첫 영화의 대사를 만 번쯤 연습했다잖는가.

마침내 촬영이 시작됐다. 상대는 안성기 씨였다. 첫 장면은 대사가 한 마디라 3번 리허설하고 오케이였다.

두 번째 신이다. 레디 액션~! 거장의 혼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는데, 무아지경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NG였다.

나의 배역은 작은 역할이다. 관객들이 보기엔 스쳐 지나가는 여러 인물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그러나 그 영화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린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역할의 배우이다. 다만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는 것이다.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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