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벚꽃 논란

일본 메이지유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마지막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다. 막부의 전통을 지키려는 최후의 사무라이 집단과 근대화를 위해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인 개혁파 간 갈등의 정점이다. 영화는 신식군대의 기관총 사격에 칼을 들고 맞서다 전멸한 무사들의 주검 위로 일시에 흩날리는 벚꽃을 클로즈업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무라이 군단의 지도자는 이 처참한 광경에 '완벽하다'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인의 벚꽃에 대한 미학적 관념은 이렇게 각별하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라는 책을 냈던 일본인도 백제의 옛수도 부여에 있는 계백장군의 동상 앞에서 벚꽃을 떠올렸다고 한다. '5천 결사대'의 이야기에서 확 피었다가 한꺼번에 흩어지는 벚꽃과 같은 '사무라이의 원조'를 발견한 것이었다.

4월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함께 계절의 문을 연다. 남도에서는 진해의 군항제가 열리고, 미국의 워싱턴조차 벚꽃 축제로 들썩인다. 워싱턴의 봄을 수놓는 왕벚나무는 일본이 기증한 재배종이다. 아베 총리의 방미 등 미'일 관계의 새로운 우호국면과 더불어 미국에서 핀 벚꽃은 우리에게 묘한 상념을 떠올리게 한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으레 등장하는 것이 '벚꽃 원조' 논쟁이다. 올해는 한'일 양국의 해묵은 벚꽃 원산지 논란에 중국 벚꽃산업협회까지 가세하며 '삼국논쟁'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우리 학자들은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에 주목하며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개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왕벚나무의 한국기원설이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의 논문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미국의 어느 학자도 제주도 원산지 설에 무게를 실은 적이 있다. 일찌감치 '벚꽃미학'에 심취되어 품종을 개발하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새겨온 일본인과 자연관이 다른 우리는 벚꽃 또한 수많은 꽃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왕벚나무를 특별하게 여기고 알뜰히 가꾸었다는 기록도 없다.

더 이상의 논쟁이 무슨 소용인가. 꽃은 국경을 가려서 피지 않는다. 벚꽃에 어린 왜색(倭色)을 애써 의식할 필요도 없다. 벚꽃도 때가 되면 피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는 봄꽃일 따름이다. 요즘 '꽃보다 ○○'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꽃보다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위대한 이념과 사상을 지닌 민족이다. 꽃이 무슨 죄인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