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생의 계절

벚꽃 바람 가득한 어느 봄날. 삶에도 계절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쯤 어디까지 온 걸까요? 봄의 품에서 물색없이 부는 하늬바람을 지나 또 한 번의 계절이 지나갑니다.

뮤지컬 '캣츠'의 언어적 고향은 T.S.엘리엇의 시집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을 노래했고 나의 봄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라일락 향기를 품은 '삶의 봄' 곁에 꿈으로 점철된 내일이 없었다면 망각의 눈으로 덮인 잠든 뿌리는 깨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이 조금 시리다면 잠든 뿌리에서 무성한 벚꽃 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상상해도 좋을 것입니다. 추적거리는 장맛비에 흠뻑 젖고 있다면 나이테의 한 줄은 더 선명해지고 잎은 풍성하게 드리워져 아낌없이 그늘을 내어 줄 것입니다. 계절은 무지개를 꺼내 들기 위해 비를 뿌리니까요. 인생의 계절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위해 희망이라는 꿈을 남겨 두어야 합니다. 내일은 무지개가 뜰 테니까요.

학창 시절 나의 오랜 친구는 비디오 영화였고 애정 깊은 무대는 애인과 같아서 사각 안의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가슴이 불꽃처럼 일렁입니다.

'블랙코미디'는 웃음을 통해 환멸과 냉소를 표현하는 드라마의 형식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의 한 장르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생은 웃지 못할 일이 참 많습니다. 환멸과 냉소 그 속에 피는 웃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같은 날은 곳곳에 꽃바람처럼 부는 공연예술에 젖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피어나는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배설하고 나면 웃음과 눈물로써 마음의 정화작용을 얻고 스트레스의 성역은 이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정화의 가장 큰 처방전은 아마도 사랑이겠지요. 사랑이야말로 위대한 탄생이고 생의 시작이며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때마침 짝짓기의 철인 것은 우연이 아니겠지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에 나무도 계절과 사랑에 빠져야 꽃을 피우듯이 우리의 4월도 아름드리 꽃망울이 방실방실 터지는 활기찬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산고의 고통 뒤에야 새 생명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하늬바람 뒤에 숨은 봄을 기다리듯, 긴 어둠이 지나야 비로소 아침이 밝아 오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생에도 새로운 계절이 다가올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달이 지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자연의 얼굴처럼 말이지요.

(뮤지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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