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선 하나로 잇는 사랑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이들을 만난다. 그 만남에는 지란지교(芝蘭之交), 관포지교(管鮑之交), 간담상조(肝膽相照), 수어지교(水魚之交)와 같은 행복한 만남이 있는가 하면, 견원지간(犬猿之間)에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당혹스러운 만남도 있다.

그중 가장 가슴 아픈 만남은 외롭게 소외된 이, 생활의 절망에 빠져 죽음마저 생각하는 이, 갈등으로 인해 몸부림치는 이, 미혼모나 버림받은 아이들, 공부에 지쳐 삶의 회의에 빠진 학생 등 삶과 죽음의 이정표 아래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다.

이런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위로와 대화로 마음과 사랑을 나누고자 모인 단체가 '생명의전화'다. 그 시작은 1963년 실직과 재취업 실패로 절망한 호주의 한 청년 로이가 자살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알렌 워커 목사에게 건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되었다. 고뇌에 찬 청년의 아픔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경청하고 위로했지만 결국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목사는 제2, 제3의 로이를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생겨난 선 하나로 잇는 사랑이 바로 생명의전화다.

알렌 워커 목사는 자원봉사자들을 훈련시키고 24시간 전화상담 시스템을 설치하여 누구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막아야 한다며 확대해 나갔다. 이 활동은 'Telephone Lifeline Opened'(전화로 생명을 구하는 선이 열렸다)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로 전 세계에 타전되었고, 이후 생명의전화는 세계 곳곳에 설치되었다. 위대한 인류애의 실현이었다.

무릇 자원봉사라면 귀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돕기 위해 교육을 받고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단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이들이 꾸려가는 '대구생명의전화'도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서른 살,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청년이 된 것이다. 그동안 활달한 청년의 기개로 보다 많은 이들과 마음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대구에 산격종합복지관. 꿈동산어린이집. 북구지역자활센터. 지역아동센터. 자살예방센터 등 6곳의 둥지도 새로 만들었다.

오늘도 생명의전화 자원봉사자들은 세상의 모든 고난과 좌절을 겪는 이들의 아픔을 마음으로 듣고, 그것을 딛고 꿋꿋이 일어설 수 있는 삶의 가치를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전국 어디서든 1588-9191로 전화를 걸면 그들의 따뜻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유가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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