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백세시대(百歲時代)의 삶

올 초 영화관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를 영상중계로 감상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별 소양이 없던 터라 큰 기대 없이 딸아이를 따라나선 걸음이었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충격과 감동으로 남아있다.

만장의 박수를 받으며 건반 앞으로 걸어 나온 작고 늙은 할아버지, 메나헴 프레슬러! 곧 쓰러질 것만 같은 등 굽은 할아버지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할 피아니스트였다. 믿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연주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연주 내내 마음을 졸였지만, 쓸데없는 기우였다. 노련한 건반 터치는 깊고 투명했으며 그 소리는 아름다웠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나였지만 분명 오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손은 고목 껍질처럼 쭈글쭈글하지만 생기 있고 행복한 표정으로 지휘자와 눈을 맞추고, 솔로 부분이 끝난 뒤엔 동그란 눈을 굴리며 악보를 주시하기도 하는 등.

그가 92세의 고령이란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작년에 솔로로 데뷔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50여 년간 속해 있던 보자르 피아노 트리오가 해체되었을 당시 그는 85세의 고령이었다고 한다. 그 나이에 솔리스트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열정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리라. 보통의 상식으로는 85세에 무엇을 꿈꾸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이다. 클래식 역사에 '전설의 데뷔'라는 부제로 기록된 메나헴의 솔리스트로서의 데뷔는 지난해 그의 나이 91세 때였다고 한다.

꿈에 도전하는 데는 늦은 나이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열정적인 삶은 나의 은퇴 후의 삶과 비교하면 사건이자 충격이었다. 아무리 백세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들 스스로 거기에 맞추어 준비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내 주위에도 일흔이 넘은 선배 한 분은 은퇴 후 성악을 공부하여 무대에서 공연하고, 또 다른 선배 한 분은 고전무용에 도전하여 발표회를 하기도 했다.

'내 나이 60을 넘은 지 한참인데 지금 무엇을 시작한단 말인가?' 하는 무력감으로 무척 힘이 들었다. '지난날 내가 누구였는데'라는 쓸데없는 자존심과 집착에 하루하루를 그냥 보냈다. 과거의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삶이다. 내일에 대한 희망과 꿈이 없다면 과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과거지향의 퇴행적인 삶을 살게 할 뿐이다.

이제 살아온 세월은 과거라는 추억의 창고에 쓸어 넣고, 메나헴 프레슬러가 산 것처럼 미래를 꿈꾸며 도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물론 나의 미래는 지금보다 주름이 더 늘어나고 또 걱정거리도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기억할 것이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재순(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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