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지 올해로 15년째인 리쟝고성(麗江古城)은 연간 수조원에 이르는 관광 수익을 창출하며 중국 전통문화의 세계화에 성공했다. 이를 주도해 온 중국 윈난성(雲南省)은 그 여세를 몰아 인근 동티베트의 고산지대 황무지도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우선 중띠엔(中甸)이라는 작은 도시 이름을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바꿨다. 벌써 이곳에는 지구촌 세계인들의 방문이 러시를 이루는 등 이름값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중국의 자국문화 세계화에 있어서 눈에 띄는 점은 리쟝고성도 샹그릴라도 모두 공통적으로 그곳에 사는 소수민족인 나시(納西)족과 장(藏)족의 삶을 집중 조명한다는 것이다. 바로 '가장 지역적인 것을 세계화' 하는 지혜를 보여 주고 있다.
◆고성 관리, 나시족 삶 우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리쟝고성 전체를 상가로 변모시킨 고성관리국과 리쟝시, 윈난성의 일관된 전통 문화유적지 관리 스타일은 보존 우선인 우리와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하회별신굿 부네탈 손상락(56) 학예사는 세계유산 리쟝고성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고성 내 문화재인 3천800여 개소의 나시족 전통 목조가옥이 빠짐없이 상가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음식점, 옷가게, 과자점, 서점, 은공예품점, 여행사, 미용실, 찻집, 신발가게, 심지어 나이트클럽, 주점에 이르기까지 고성 내 고가옥에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간판이 걸려 있다. 그뿐만 아니다. 골목길 입구와 건물 틈새, 나무 그늘 아래, 심지어 작은 다리 위에도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세계유산이 장터를 방불케 하는 상가가 되다니. 우리 하회마을에서는 말도 안 되는 문화재 원형 변경과 경관훼손이다. 하지만 윈난성 리쟝고성에선 그렇지가 않다. 가게도 노점상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인 장사를 할 수 있다.
실지로 그런지 고성 내 작은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옥수수와 민물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워 파는 노점상 청년에게 "허가가 있느냐"고 물어보자 대뜸 가슴주머니에서 허가증을 꺼내 보여 준다. 나시족이라서 면세 혜택도 받는다고 한다. 중국의 세계유산 관리는 차(茶) 농사를 짓고 차마고도(茶馬古道)를 통해 무역을 하며 살아온 나시족들에 방점을 찍어 두고 있다.
고성관리국 측은 상가운영을 위해 유네스코를 설득하는 방안의 하나로 우선 철저한 자체 고성관리에 있었다고 한다. 상가 간판 부착에도 까다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재질은 고가옥과 같은 나무여야 하고 나시족 고유의 동파(東巴) 문자와 간자체, 영어 등 3개 문자로 간판을 만들어야 한다. 고성 내 모든 건축물의 보수와 신축은 고대건물 전문 목수만이 할 수 있고 거주 인원 전원은 주민신고망으로 편성돼 고가옥 보존관리의 예찰요원으로 활용된다. 이처럼 세계유산에 대한 철저한 자체 관리로 신뢰를 얻고 고성의 상가활용에 대해 유네스코의 동의를 얻어냈다고 한다.
권두현(50) 경북미래문화재단 이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제시하는 규정만 잘 따르고 있는 우리가 사실 너무 순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샹그릴라도 소수민족 삶 조명
윈난성은 더 나아가 해발 3,290m로, 백두산(2,750m) 보다 440m나 더 높은 고산지대 황무지 중띠엔시를 샹그릴라로 개명하고 소설 속의 이상향(理想鄕)이라는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고 있다. 아직 관광지 기반조성은 시작단계이지만 이상향을 꿈꾸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등 이미 브랜드 선점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윈난성은 황금빛 지붕 기와를 자랑하는 티베트 불교사원 쑹찬린스(松贊林寺)와 티베트 6대 성산으로 윈난성 최대 만년설산 매리쉐산(梅里雪山.), 블랙야크들의 초원인 나파하이를 1933년 영국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 1900~1954)이 지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티베트 라마교 사원과 칼라칼라산, 그리고 대평원이라고 주장한다. 티베트어로 '내 맘속의 해와 달'이란 뜻의 샹그릴라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인도도 히말라야 산맥 아래 한 마을을 샹그릴라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네팔에서도 관광지 개발에 미리 써먹었었다.
아직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삭막한 거리와 어지러이 나는 조장(鳥葬)터의 까마귀떼, 그리고 즐비한 티베트 너와집과 파르쵸 천조각만 겨울바람에 펄럭이고 있어 스산한 분위기는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겨울철이면 지독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여서 가슴이 조이고 숨쉬기조차 힘들어 세계인들을 지속적으로 불러들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윈난성은 티베트 장족들의 집단 거주지인 중띠엔고성의 너와집 복원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벌써 고성의 복원 공정이 80%에 이른다. 특히 리쟝고성의 나시족과 마찬가지로 고성 내 장족들의 삶을 집중 조명하고 티베트 불교도들의 영생적인 삶도 부각시키면서 샹그릴라 도시 이미지를 높여 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과 역발상이 밑천이다. 벌써 산소 스프레이 캔은 고산지대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는 신상품이다.
권두현 이사는 이러한 윈난성의 전통문화 세계화 사업에 혀를 내두른다. 그는 1995년 윈난성 대지진을 리쟝고성 세계화의 계기로 만들 듯이 상그릴라도 작년 1월 발생한 중띠엔고성의 대화재를 홍보 계기로 삼았다는 것. 당시 엄청난 화재로 티베트 전통 목조가옥 수백 채가 불에 타 사라지는 장면이 뉴스로 타전되면서 세계인들의 이목이 쏠렸는데, 이때도 고성 내 티베트 라마교와 장족의 티없는 삶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한다. 순발력 있는 윈난성의 자국문화 홍보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사자성어를 무색게 하고도 남는다.
◆리쟝고성, 그리고 하회마을
"나시족의 마을이 주변 자연과 잘 조화돼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리쟝고성은 우리 하회마을과 닮은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손상락 학예사는 하천과 마을이 하나 된 친수 공간도 그렇지만 세계유산이 된 주 소재가 목조 고가옥이라는 점도 닮은 점이라는 것. 리쟝고성과 함께 인근에 쑤허고진(束河古鎭)과 바이사고진(白沙古鎭) 등 모두 3개 지역으로 문화유적지가 분산돼 있는 것도 하회마을 인근에 소산마을과 가일마을 등의 전통마을이 위치한 것과 유사하단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면적도 리쟝고성이 7.79㎢이고 하회마을도 7.2㎢로 비슷하다. 주민들이 사는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인 점도 같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그렇다. 리쟝고성보다 10년 뒤인 2010년에 등재됐지만 잠정목록에는 1998년 등재됐었다.
연간 관광객 2천만 명을 상회하고 관광수익도 400억위안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하는 리쟝고성의 세계화 성공은 분명 우리가 배울 점이다. 관광객 100만 명 내외의 수준인 하회마을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다녀간 후 늘기는 했지만 리쟝고성에는 비할 바 아니다.
그렇지만 하회마을도 세계화를 위한 장점이 적지 않다. 나시족들의 차마고도 중심지라는 것뿐인 리쟝고성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서애 류성룡과 청음 김상헌, 항일투사 권오설 등 쟁쟁한 국가 인재의 요람이었고, 부용대의 애틋한 전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다. 세계적인 걸작 국보 제121호 하회탈, 중요무형문화재 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유줄불놀이 등 다양한 전통문화 콘텐츠가 전승되고 있다. 또한 국제탈춤페스티벌이 매년 열리고 유네스코 산하 NGO인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의 국제무대 활동도 활발하다.
이렇다 할 역사적 기록이 전무한 리쟝고성은 사실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장쩌민, 주룽지 등 중국 국가지도자들이 직접 나서 개발을 독려한 덕분에 지금의 관광성으로 변모한 것이다. 개발 주체도 리쟝시가 아닌 처음부터 차상급 기관인 윈난성이었다. 하회마을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유 중 하나가 '환경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대표하는 전통적인 사람 정주지의 탁월한 사례'이다. 그러나 마을주민들의 삶은 애써 외면한다.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가 '민속마을 하회여행'이라는 책을 통해 소개하던 '목 축이는' 쉼터도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없애 버렸다.
"모든 건축물은 시간이 흐르면 다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우리 시대에는 그 기간을 연장해 갈 뿐이지요." 리쟝고성 관리국 시소우성(施壽僧) 부주석은 부서지면 보수하고 다시 짓는 게 문화재 관리 요체라고 설명한다. 박제처럼 유리관에 넣어 완벽하게 보존만 하는 게 상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목조 고가옥의 활용과 보존은 서로 상충되는 모순점이 있지만 문화 유적지로서의 가치보다 관광 휴양지로서의 가치를 더 따진다는 것이다.
중국적 시각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문화융성시대를 맞은 신도청권 하회마을이 세계유산에 걸맞게 도약하자면 중앙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도청권전략기획팀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심용훈 객원기자 goodi6864@naver.com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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