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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골목길 도시다] ①'철거' 아닌 '원형 보존' 성공

도심 1천여개 골목길…타임캡슐 타고 '근대로 시간여행'…입소문 관광객 밀물…

청라언덕 동산선교사주택.
청라언덕 동산선교사주택.
대구근대골목투어 2코스
대구근대골목투어 2코스 '근대문화골목' 지도. 대구 중구청 제공
진골목
진골목
대구 중구 쌈지공원 관광안내소에서 장삼남 문화해설사가 관광객 배채윤, 황혜진(왼쪽부터) 씨에게 대구근대골목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대구 중구 쌈지공원 관광안내소에서 장삼남 문화해설사가 관광객 배채윤, 황혜진(왼쪽부터) 씨에게 대구근대골목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골목길은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 아이콘이 됐다. 전국구 관광지로 떠오른 대구근대골목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곳은 대구 골목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골목길은 관광 외에도 인문지리나 주민생활사 등의 측면에서 발굴 및 조명해야 할 요소가 많은 공간이다. 어떤 매력이 있고,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매일신문은 대구 골목길의 과거를 찾아, 현재를 살피고, 미래도 상상해본다.

◆대구는 골목길 도시

#1. 어머니의 사투리로 대구를 노래하는 상희구 시인. 그는 2012년 '모어로 읽는 연작장시' 시리즈 1집 '대구'를 펴낸 이후 최근 4집까지 냈고, 10집 완결을 목표로 시를 쓰고 있다. 상희구 시인의 시작 배경은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낸 1950~1970년대의 대구다. 유년기를 보낸 칠성동, 자신의 키보다 큰 보리들을 헤집고 다니며 황홀감을 느낀 검다이 보리밭, 시인의 길로 이끌어 준 '파블로 네루다'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집을 접한 중앙통 문화서점 등 상희구 시인의 기억 속 여러 장소가 작품에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장소들을 선으로 이으면 나오는 것이 바로 골목길이다. 상희구 시인은 "어린 시절 골목길에 들어서면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일부러 헤매고 다니며 모험과 탐험을 즐겼다. 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주변을 조금만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길을 잃는다. 그런데 이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때 그때 새로운 골목길을 발견하는 셈이다. 바로 골목길의 매력"이라고 했다.

#2. 지난해 엄창석 소설가가 펴낸 소설 '빨간 염소들의 거리'는 1970년대 대구의 골목길이 배경이다. 대구측후소(대구기상대의 옛 이름), 중앙중학교, 대구 최초의 육교인 신암육교, 송라시장, 73'74아파트 등이 이어지는 대구 신천변 4㎞ 남짓 골목길이다. 엄창석 소설가가 실제로 10대 시기를 보낸 곳들이며, 소설 속에서 '빨간 염소'로 지칭되는 소년들의 활동 무대다.

이하석 시인은 이 소설에 대해 "10대의 유적을 새롭게 발굴하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엄창석 소설가는 "소년들이 성년으로 나아가도록 각성을 불러일으킨 공간이 바로 골목길"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실 소설의 처음 제목은 '빨간 염소들의 골목'이었다"고 덧붙였다.

#3. 오정미 시인은 2011년 시집 '젊은 골목길'을 펴냈다. 60여 편의 시를, 그러니까 대구 도심에 있는 60여 개의 골목을 운율로 풀어냈다. 물론 대구 도심의 모든 골목을 노래하지는 못했다. 아마 모두 다뤘다면 시집은 사전처럼 두꺼워지지 않았을까. 오정미 시인은 시집에서 "대구 도심에는 1천여 개의 골목이 있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골목길이 900여 개나 된다"며 "골목은 타임캡슐이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반세기 전으로 타임 슬립(시간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세 작가의 작품 및 작품에 대한 언급에서 대구 도심 골목길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세 작가의 작품 속 골목 대부분을 지금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 동안 변형되거나 훼손되지 않은 골목길이 꽤 많다는 얘기다.

매일신문이 2008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연재한 '대구 도심 재창조' 기획 기사에 따르면 대구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인 '대구 시가지 계획령'(1937~1965)에서 대구 도심은 제외됐다. 대구와 외부를 연결하는 도로는 새롭게 닦였다. 하지만 대구 내부 동성로와 북성로 등 오래된 길들은 노선 그대로 쓰였다. 이러한 줄기길에서 가지처럼 퍼지는 골목길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들어 도입된 도심재생정책에서도 골목길은 '철거'가 아닌 '보존으로 새롭게 창조하는' 대상이 됐다.

대비되는 사례가 있다. 서울 종로구의 피맛골은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 대상이 돼 일부 구간이 철거됐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남은 구간만 뒤늦게 특화거리로 조성됐다. 그러나 이미 몇몇 명소와 옛 정취를 잃어버린 뒤였다. 반면 대구근대골목투어에 포함돼 있는 진골목은 오랫동안 뒷골목으로 방치되다 노선은 물론 정소아과 등 주변 명소들도 거의 원형 그대로 정비돼 현재 인기 관광 코스가 됐다.

◆대구근대골목투어에서 가장 인기 많은 2코스 '근대문화골목'에 가 보니

3월 7일 오후 대구 중구 동산동 3'1만세운동길과 계산성당 사이에 있는 쌈지공원 관광안내소. 최근 문을 연 이곳은 요즘 대구근대골목투어의 새 중심지로 떠올랐다.

모두 5개의 근대골목투어 코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2코스 '근대문화골목'(동산선교사주택~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 고택,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두사충 뽕나무골목~에코한방웰빙체험관~구 제일교회~약령시한의약박물관~영남대로~종로~진골목~대구화교소학교)의 본격적인 출발지라서 관광객들이 이것저것 문의를 하러 많이 드나들어서다.

장삼남 문화해설사는 "코스 곳곳에 있는 도장(스탬프)을 모으는 '스탬프 투어'를 하는 관광객들이 관련 문의를 하러 많이 온다"며 "매일 문화해설사 1명이 관광안내소 근무를 하는데, 들르는 사람이 많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문 닫는 시간인 오후 6시를 넘기고도 안내소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퇴근을 늦추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4년 전부터 대구근대골목투어에서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는 장 해설사는 "최근 수년간 근대골목투어에 새로운 모습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우선 먹을거리가 있다. 계산성당 옆 커피명가의 딸기케이크, 중앙로 삼송제과의 마약빵, 김광석길 로라방앗간의 치즈떡도그 등이다. 근대골목투어가 인기를 얻으면서 언론에 소개됐거나, 근대골목투어를 다녀간 관광객들이 SNS나 블로그 등으로 입소문을 낸 덕분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 하나. SNS나 블로그는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한다. 그만큼 젊은 관광객이 많아졌다. 장 해설사는 "근대골목투어 초기에는 중장년층 이상 단체 방문객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코스를 한 번 돌기만 하고는 가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수년 동안 삼삼오오로 찾는 연인, 친구, 가족 단위 관광객 비중이 높아졌다. 이들은 근대골목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또 오래 머물며 즐길 거리를 찾는다. 근대골목투어가 더욱 활기를 얻게 된 까닭"이라고 했다.

이날 서울에서 온 황혜진(27) 씨는 대구에 사는 친구 배채윤(27) 씨와 함께 근대골목투어를 하다 쌈지공원 관광안내소에 잠시 들렀다. 황 씨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대구근대골목투어를 알게 됐다"며 "코스 곳곳에 박물관, 체험관, 전시관이 다양하게 배치돼 있어 좋았다"고 했다. 배 씨는 "멀리서 온 친구 덕분에 고향 대구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도 손에 든 근대골목투어 지도를 장 해설사에게 보여주며 스탬프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맛있는 음식을 파는 '맛집'은 어디 있는지, 자신들이 빠뜨리고 방문하지 않은 명소가 또 있는지 등을 물었다.

전북 군산시 공무원들도 이날 대구근대골목투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왔다. 군산시도 근대 관련 흔적이 많아 관련 거리나 박물관을 이미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대구근대골목투어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얻자 견학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들은 하루종일 대구 중구 진골목, 약령시, 김광석길 등을 둘러봤고, 저녁을 먹기 위해서도 대구 남구 안지랑에 있는 곱창골목으로 갔다. 대구 관광 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골목길만 누빈 셈이었다. 이제 골목길을 빼놓고는 대구 관광을 얘기할 수 없게 됐다.

글 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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