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 거주 자국인에 1㏊ 땅 무상 제공
러 정부의 달콤한 제안은 불안감 표시
동북아 국가들, 극동에 대한 관심 커져
새로운 영토 확장방법 될지는 지켜봐야
지난 2월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서 읽었던 신문엔 '극동 거주 러시아인에게 1㏊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1㏊면 3천 평이 넘는, 꽤 넓은 면적의 땅이다. 물론 몇 가지 제한 규정은 있었다. 러시아 국적자여야 할 것, 타인에게(특히 외국인) 임대나 판매 금지. 별장을 짓건, 농사를 짓건, 사업을 하건 마음대로지만, 5년 동안 땅을 놀리면 국가가 다시 회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늘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우리네에겐 그야말로 솔깃한 제안으로 보였다. 그런데 대다수 러시아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어차피 도시 근처 요지 땅을 줄 것도 아니요, 준다고 해도 뭔가를 할 자본이나 노동력도 없고, 가서 살 것도 아니니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결국 대자본을 가진 사람들이나 관료들이 여러 사람 명의를 빌려 좋은 땅을 선점할 것이고, 그걸로 또 큰돈을 벌지 않을까라는 것이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예측이었다.
사실 이 제안엔 러시아 정부의 오랜 고뇌가 담겨 있다. 역사적으로 시베리아와 극동은 러시아인들이 기피해온 지역이었다. 유배지이자 반란자들의 도피처 정도로 인식되던 이곳은 19세기 중반 크림전쟁의 패배로 더 이상 남하가 불가능해진 위정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땅으로 보였다. 부동항 개발과 무한한 천연자원 발굴이 가능한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러시아제국 말기부터 극동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는 토지와 정착금 무상제공이라는 혜택이 주어졌다. 소련시절에도 그 전통은 이어져서 극동지역은 비교적 젊은 도시, 젊은 인구가 거주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부터 극동지역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호주나 아이슬란드보다도 더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 되고 말았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댄 지역에서는 불법 이주자들이 러시아 주민들보다 더 많아져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우수리스크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주요 상권을 지배하는 것도 이미 중국 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는 이 지역 토지와 자원 개발에 공동투자하자는 중국의 끈질긴 제안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게 여겨질 것이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민화는 러시아인들에게도 땅은 늘 부족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 파흠은 땅에 대한 집착이 강한 농부였다. 바슈키르 민족이 사는 곳에서는 아침에 출발해서 해 질 녘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자기가 지나온 땅을 전부 헐값에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땅을 사기 위해 새벽녘에 출발한다. 더 넓은 땅을 갖고픈 욕심에 파흠은 점점 더 멀리 달려가고, 해가 지기 직전에야 출발지로 돌아왔지만 너무 힘든 나머지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자신이 묻힐 한 평 남짓의 땅이 고작이었다.
파흠이 현대에 살았더라면, 극동의 땅에서도 그토록 숨 가쁘게 달렸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이 달콤한 정부의 제안이 어째 덧없어 보인다. 러시아 정부의 극약처방은 점점 러시아인들이 떠나가는 극동지역에 대한 불안감의 표시인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가 제공할 무상의 토지는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최근 합류한 한국의 '파흠들'에 의해 다른 식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와 농업협정을 맺고, 극동지역 농산물 가공업을 발전시키려는 계획으로 극동의 땅을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기업인들 말이다. 러시아의 파흠에겐 극동 땅이 필요 없을지 몰라도, 한반도 통일 이후 신동북아 시대를 눈앞에 둔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극동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러시아인들의 그것과는 달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한 평 남짓한 기업가들의 무덤으로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영토 확장 방법이 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윤영순 경북대교수 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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