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방행사도 들러리 서는 지방자치

KTX 포항역 역사적 개통식, 경주 '세계 물의 날' 기념식, 기초長 축사도 못해

대구경북을 비롯해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 때마다 지역이 중심에 서지 못하고 들러리 신세가 되고 있다. 중앙정부 인사가 참석하면 으레 중앙정부 관계자가 주인공이 되고,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은 뒷방 구석으로 밀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성년을 맞는 지방자치가 '나이를 거꾸로 먹었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포항에서 열린 KTX 포항역 개통식. KTX가 포항으로 들어오는, 포항으로 봐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하지만 포항 잔칫날에 이강덕 포항시장은 '주빈'이 되지 못했다. 이 시장은 KTX 포항역 개통식의 담당 시장인데도 불구하고 이날 축사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멀찍이서 박수만 쳐야 했다.

이 때문에 행사를 지켜보던 대다수 참석자들은 물론, 시민들도 의아해했다. 참석자들은 "포항시에서 열리는 행사에 포항시장이 인사 한마디 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는 목소리를 한결같이 쏟아냈다.

당초부터 이 시장은 말 한마디 못하고 박수만 치는 것으로 계획이 짜였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관계로 의전은 총리실에서 직접 챙겼고 개통식 행사는 철도시설관리공단이 주관했다. 의전을 총괄한 총리실 계획에는 포항시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와 포항의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만 축사 대상자에 포함됐다가 역시 포항이 지역구인 박명재 국회의원의 강력 반발로 박 의원도 축사 대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한 참석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시장은 국무총리 접견도 못하면서 50만 포항시민 대표자로서 제대로 된 의전을 받지 못했다"며 "김관용 도지사가 이 시장을 총리에게 소개하는 등 주빈으로서 대우를 해주려는 모습이 보였을 뿐 이날 전체적인 의전 진행에서 이 시장이 너무 소외됐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20일 오후 경주에서 열린 '세계 물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도 '지방 소외' 논란이 있었다. 이날 국무총리 혼자 축사를 했으며 지방 언론 통제까지 이뤄져 경북도'경주시는 행사 주최 측인 환경부 등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경북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중앙정부가 총괄하는 행사라 해도 지방에서 열릴 경우, 지방의 권한을 인정하고 지방정부와 조율도 해야 하는데 중앙정부의 일방통보식 의전 및 행사 진행이 잦아 곤혹스럽다"고 했다.

도내 한 기초자치단체 의전 담당자는 "중앙정부가 관여하는 행사는 지방에서 열리더라도 기초자치단체장은 행사 주빈에서 원칙적으로 배제된다"며 "오랫동안 불만을 가져온 것이지만 관행이 그렇고,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에 얽매여 사는 지자체 입장이라 내놓고 얘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금 국무총리는 충청남도지사 출신이라 그래도 지방을 많이 이해하고 나아진 편"이라며 "예전엔 지금보다 더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경산에서 최경환 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는 사실상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국책사업 기공식이었지만 지방의 목소리가 반영됐다. 지금까지 관행을 변화시킨 것.

이날 축사 순서는 최영조 경산시장이 1번이었고 도건우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최경환 경제부총리→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김관용 경북도지사→장대진 경북도의회 의장→이천수 경산시의회 의장 등의 순으로 이뤄졌다. 경산이 생기고 가장 큰 국책사업 기공식이 열린 만큼 '당연히 경산시가 주인공'이라는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경북도 한 관계자는 "행사 준비 과정에서 '그래도 중앙정부 관계자가 먼저 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경산시가 앞에 서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 반영되면서 기초자치단체장이 부총리에 앞서 축사를 했다"며 "참 보기 좋은 행사였고 김관용 도지사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나서 축사 순서 양보를 하려 했다"고 전했다.

경산 김진만 기자 factk@msnet.co.kr 포항 이상원 기자 seagull@msnet.co.kr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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