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관피아 떠난 자리, '정(政)피아'가 꿰차는 기막힌 현실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대표적 치부의 하나는 '관피아' 문제였다.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의 검은 유착을 매개해 온 관피아는 우리 사회의 부패를 확대재생산하는 핵심 고리이다. 이를 끊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부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가 가르쳐 준 고통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런 깨달음을 현실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부끄럽게도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지난 1년간 관피아가 떠난 자리를 정치권 출신의 낙하산 이른바 '정(政)피아'가 꿰차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공공기관 300곳의 기관장'감사 397명 중 관피아는 세월호 참사 이전 161명에서 118명으로 43명이 줄었다. 그러나 정피아는 48명에서 53명으로 5명 늘었다. 관피아의 자리를 정피아가 채우는 이 현실 앞에 국민의 절망감은 깊어간다.

공공기관만이 아니다.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자리는 이해할 수 없는 임명 지연 사태 끝에 체육계 경험이 없는 전직 의원이 차지했다. 금융계도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들이 요직에 앉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정치권을 배경으로 금융권에 진입한 낙하산이 5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피아가 자리에 걸맞은 전문지식과 개혁 의지나 비전을 갖췄다면 그나마 용인해줄 만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해당 기관 내'외부의 평가는 그렇지 않다. 전임자가 그랬듯이 이들 역시 높은 보수를 받으며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정권이 바뀌면 떠날 것이란 얘기다. 그 자리는 다음 정권의 정피아들이 차지할 것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공기업 개혁이나 경쟁력 향상은 꿈도 못 꾼다. 이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이제는 이런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 현재 시행 중인 공모(公募)를 공모답게만 운영하면 된다. 공모가 내정자를 결정해놓고 벌이는 요식행위라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렇게 '무늬만' 공모가 되지 않으려면 대통령과 집권당이 공기업 임원 자리를 논공행상 수단으로 보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런 결단이 없다면 정피아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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