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수학여행

1969년 개봉한 영화 '수학여행'은 일간신문에 소개된 낙도 어린이들의 실화가 소재였다. 바깥세상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외딴 섬 아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서울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과정과 에피소드를 그린 것이다. 자전거도 구경하지 못한 아이들이 난생처음 기차를 타고 한강철교를 건너서 발걸음을 한 서울은 얼마나 별천지였을까.

섬뿐만이 아니다. 1960, 70년대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낙도 어린이들과 비슷한 수학여행의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차에 올라 경주에서 처음 목격한 신라 왕릉이 그렇게 클 수가 없었다. 검은 교복차림으로 찾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와 남해 바다와의 첫 대면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감흥으로 남았다. 순박한 시절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어서 더 특별했다.

소풍은 대개 하루 만에 갔다가 오지만, 수학여행은 낯선 곳에서 며칠씩 묵기 마련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은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은 그래서 오랜 세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수학여행은 이렇게 정치, 경제, 문화나 산업의 주요 현장을 직접 견학하며 식견을 넓히고, 교사와 교우들 간의 단체활동을 통해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적 효과 외의 그 무엇이 또 있다.

수학여행은 18세기 영국 귀족들이 자녀가 교육과정을 마무리할 즈음 일정기간 유럽을 여행하도록 한 것이 효시라는 얘기가 있다. 다양한 문화 체험과 어학실력 향상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1천400년 전 신라의 화랑들이 명산대천을 찾아 심신을 수양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으니, 수학여행의 원조는 화랑이 아닐지.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수학여행이 시작된 것은 190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여파로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학교가 많다고 한다. 대구만 보더라도 전체 초'중'고교 가운데 올 들어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학교가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대신 가족단위의 여행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낙도 어린이들이 서울 구경을 나서던 어려운 시절과는 달리 외국을 옆집 드나들듯 하는 문명 세상이지만, 또래들과 함께하는 수학여행은 그들만의 세계가 또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낙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불안전하고 부도덕하게 만든 못난 어른들이 아이들의 학창시절 추억 만들기조차 앗아가 버렸다.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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