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매일 물 8잔 마셔야 좋다?

미신에는 사전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첫 번째는 '초자연적인 인과 관계에 대한 아무 근거 없는 믿음'을 얘기한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든지 '사람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 같은 것들이다. 두 번째는 '잘못된 근거에 기인한 믿음'을 의미한다. 언뜻 보면 과학적 근거를 가진 믿을만한 얘기 같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지식에 기반해 근거가 없는 경우다.

두 번째 의미로서의 미신은 의학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2007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영국의학저널이라는 의학 잡지에 '의학적 미신들'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그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7가지의 의학적 미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 사람들은 하루에 적어도 8잔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한다, 인간은 평생 뇌의 10%만을 사용한다,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머리카락과 손톱은 계속 자란다, 면도를 하면 털은 더 빨리 더 굵게 자란다, 희미한 조명 아래서 책을 읽으면 눈이 나빠진다, 휴대전화는 의료기기에 영향을 미쳐 위험하다, 칠면조를 먹으면 기운이 없어진다 등이다.

이러한 주장의 오류를 살펴보자. 하루 최소 8잔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은 1945년 영양학회에서 사람은 하루에 8잔의 수분을 소비한다는 말에 근거해 생겼다고 한다. 수분이 물로 바뀌면서 과일이나 야채, 커피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수분은 무시한 채, 물 8잔을 마셔야 하는 걸로 오해되고 있다.

뇌의 잠재력을 대변하는 10% 이용설도 근거가 없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영상을 보면 인간의 뇌 가운데 잠자는 부분은 없으며 심지어 각 뇌세포와 신경단위조차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머리카락과 손톱은 계속 자란다는 말도 죽으면 피부가 쪼그라들면서 상대적으로 손톱이나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듯이 보일 뿐이다. 면도를 한 체모와 면도를 하지 않은 체모를 비교한 실험에서는 면도했다고 모발이 더 빨리 자라거나 굵어지진 않았다. 다만 면도 후 처음 나는 체모의 끝이 뭉툭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희미한 조명 밑에서 책을 읽으면 눈을 긴장시키고 예민하게 만들지만 휴식을 취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 더 졸린다고 믿는데, 졸음을 유발하는 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이 유독 칠면조 고기에만 더 들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의료기기에 영향을 줘서 사망했다는 보고는 없었고, 실험에서도 휴대전화가 의료기기의 오작동을 유발한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속설들이 널리 퍼지는 이유는 전문가나 매스미디어 탓이 크다. 특히 환자들은 의학 전문가나 의사들이 말하는 것을 비판 없이 믿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전문가, 특히 의사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근거에 입각하여 의학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창호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