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오일장에는 벌써부터 행상하는 할머니들로 붐빈다. 옆에 앉아 귀동냥 눈동냥을 하고 있으면 '지역마다 말맛이 이렇게도 다양할까'하고 놀랄 때가 많다. 특히 물건값을 흥정할 때나 서로 오가는 눈짓과 몸짓 등에서 우리는 상대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단박에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뭐니해도 시골장의 백미는 사투리의 맛이다.
사투리에는 어조나 속도, 고저와 음색, 장단과 강약 등을 따라잡기 어려운 나름의 맛이 있다. 이런 사투리의 맛에 나는 한동안 푹 빠져 있었다. 특히 전라도 사투리 어조가 그랬다. "어따, 거시기, 오메, 허벌나게, ~잉!, ~당께, ~허제"뿐 아니라, "내가 어제 거시기랑 거시기 하다가 거시기한테 거시기 했는데 거시기 해부렀다"에 와서는 그만 미궁에 빠지고 만다. 어디 그뿐인가! "왐마, 오매, 어찌아스까나, 근디"의 감탄사라든가, "안녕하셨지라? 어디 아프당가? 고맙고만잉, 어따 징하게 반갑소잉~, 으메 좋은겨, 니미럴, 이거 우짠다유, 모라고라? 아따 껄떡대지 마쇼" 등등 부지기수다.
이런 남도 특유의 해학성과 미학적 함의에는 사투리 가락이 태초부터 생긴 비밀 기호 같다는 생뚱맞은 생각도 해 본다. 훗날, '거시기'는 사실 사투리 같은 표준어이고, '뭔가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나, 딱 꼬집어서 지정하기 어려울 때' 쓰는 일종의 대명사라는 것을 알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경상도 사투리는 투박한 질감이 느껴진다. '어디라예?, 머라꼬예?'와 같은 부드러운 여성의 어감도 있고, '밥뭇심더' 같은 뚝심이 느껴지는 남성의 어감도 있다. 게다가 '갑니꺼? 안갑니꺼?'와 같은 다소 시비조에 해당하는 사투리도 있다. '멀문노?, 또 보입시데이, 사랑한데이'와 같은 은근슬쩍 매력적인 말이 있는가 하면, 북부지방의 경우 '오셨니껴?, 잡샀니껴?, 갈라니껴?, 우앨라껴?'와 같은 의문형 종결어미 '~껴'는 배꼽을 잡는다. 그리고 '낯시꺼라, 그칼래?, 얄부리하다, 내삐래라, 천지삐끼리다'와 같은 예는 다른 지방에선 숫제 알아듣기조차 어렵다. 그런가 하면, '만다꼬?, 고마 쌔리 마!, 머째이, 그그는 그기고, 이그는 이기지' 등과 같은 외국어 수준의 사투리도 있다. 지면상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와 북한 사투리를 소개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사투리에는 인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고, 생사고락의 살아 숨 쉬는 말맛이 깊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투리의 말에서 아득한 시간과 영원의 정서를 맛본다. 현재 지구 상의 언어는 종류가 모두 6천912가지라고 한다. 멸종위기 언어학자인 데이비드 해리슨은 "기존 언어의 90%가 2050년까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사투리가 중요한가. 그것은 현대사회의 규격화 표준화된 인간의 생각을 다양화하는 데 큰 일조를 해서다.
김동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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