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태맹의 시와함께] 눈, 바다, 산다화(山茶花) 8.-김춘수(1922~2004)

내 손바닥에 고인 바다,

그때의 어리디어린 바다는 밤이었다.

새끼 무수리가 처음의 깃을 치고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동안

바다는 많이 자라서

허리까지 가슴까지 내 살을 적시고

내 살에 테 굵은 얼룩을 지우곤 하였다.

바다에 젖은

바다의 새하얀 모래톱을 달릴 때

즐겁고도 슬픈 빛나는 노래를

나는 혼자서만 부르고 있었다.

여름이 다한 어느 날이던가 나는

커다란 해바라기 한 송이

다 자란 바다의 가장 살찐 곳에 떨어져

점점점 바다를 덮는 것을 보았다.

(전문. 『처용단장』. 미학사. 1991)

말년의 김춘수는 "그럭저럭 내 시에는 아무것도 다 없어지고/ 말의 날개짓만 남게 됐다./ 왠지 시원하고 왠지 서운하다" (「말의 날개짓」『거울 속의 천사』 2001)고 했다. 그 스스로 말했듯이 '사상과 역사를 믿지 않는' 그의 '무의미 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의미 이전의 원점에서 보려는 노력'으로서의 시다. 그의 기획은, 바디우가 설명하듯이, 헤겔의 근대 이 후 정치와 과학에 자리를 내준 철학의 자리를 대신하던 시의 시대의 이념에 이어져 있다. 시의 이념은 모든 앎에 구멍을 내고 앎을 말소시키는 것, 혹은 시는 말라르메의 이야기처럼 주체로서의 작가가 부재할 때 나타난다고 한 그 역사적 지점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김춘수의 시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그가 스스로 평가하듯이 그의 시는 말의 날개짓으로만 남지 않았고 (혹은 더 큰 날개짓으로 남았고) 그의 무의미의 궤적은 이제 의미의 궤적이 되어 있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그 독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한 이미지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인가 묻기 때문이다. 모든 이미지가 그 무엇인가를 비유하는 것은 아니다. 손바닥-어린 바다-무수리 새-자라는 바다-새하얀 모래톱-달리는 나-해바라기-살찐 바다. 김춘수의 이 이미지들은 독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에 구멍을 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살찐 바다를 덮는 해바라기 한 송이에, 가장 취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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