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자 위해 남자 순장? '여성우월주의' 신라 무덤

5세기 돌무지덧널무덤 첨성대 남쪽 분지서 발굴

첨성대 남쪽 경주분지에서 드러난 5세기 후반~6세기 초반 무렵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1호분. 남녀로 추정되는 인골 2개체 분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엎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첨성대 남쪽 경주분지에서 드러난 5세기 후반~6세기 초반 무렵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1호분. 남녀로 추정되는 인골 2개체 분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엎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2호 돌무지덧널무덤 출토 은제허리띠와 각종 금목걸이.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2호 돌무지덧널무덤 출토 은제허리띠와 각종 금목걸이.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1천500년 전, 신라의 서라벌에 살던 젊은 남녀가 한 무덤에 나란히 묻혔다.

어두운 땅속에 기약 없이 누워 있던 남녀는 1천여 년의 세월을 딛고 마침내 최근 세상에 나타났다.

그런데 무덤 속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무덤의 주인인 여성은 반듯하게 누웠고, 남성은 여성 위에 비스듬히 겹쳐진 채였다. 신라 왕국 남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성의 무덤에 남성이 순장된 형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경주 황남동 첨성대 남쪽에서 20, 30대로 추정되는 남녀의 인골과 금'은 장신구, 말갖춤(馬具) 등 신라시대 유물을 부장한 돌무지덧널무덤을 찾았다고 9일 밝혔다. 인골과 부장품, 무덤의 형태에 비춰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1호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이름 붙인 이 무덤에서는 인골 2개체분이 아래위로 포개진 상태에서 발견됐다. 아래쪽 인골은 하늘을 바라보며 똑바로 누운 상태인데 비해, 위쪽 인골은 아래쪽 인골 위에 엎어진 상태였다. 조사단은 아래쪽 인골이 하늘을 바라보며 똑바로 누운 상태임을 감안해 이 사람을 무덤 주인공으로 봤다.

조사단은 인골들을 감정한 동아대 김재현 교수 판단을 근거로 "아래쪽 인골은 허벅지 뼈가 얇고 두개골의 귓바퀴 뒤쪽 뼈 형태가 여성적 특징을 보인다"면서 "다리뼈의 근육선이 두드러지고 치아의 크기와 닳은 정도 등으로 미루어 근육이 발달했던 30대 여성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인골은 금귀걸이와 금박을 장식한 것으로 보이는 허리띠를 착용했으며, 동쪽 부장(副葬) 공간에서는 말안장과 장식 꾸미개, 발걸이 등의 말갖춤, 큰 칼, 항아리 등의 유물도 확인됐다.

위쪽 인골은 무덤 주인공의 오른쪽 어깨 부근에서 치아가 노출됐고, 다리뼈 등이 여성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겹쳐진 채 발견됐다.

조사단은 "안치 상태와 착용 유물이 없는 점으로 보아 위쪽이 순장자로 추정되며, 종아리뼈의 가자미근선 발달 정도와 넓적다리뼈의 두께, 치아 등으로 볼 때 위쪽은 20대 남성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단지 남녀교합 상징화" 고고학자 다른 해석도

◆포개진 순장 인골이 발견된 것은 처음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무덤에 다른 사람을 같이 묻는 '순장' 풍습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 가야 모두에서 나타나지만, 이처럼 포개진 위치에서 성인인 주 피장자와 순장자의 인골이 발견된 경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성의 무덤에 남성을 순장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다는 것.

조사단은 "근육의 발달 정도와 함께 묻힌 말갖춤, 큰 칼 등의 유물로 볼 때 이 여성은 말을 타고 무기를 다루던 신라 귀족일 가능성이 있다"며 "인골 출토 상태로 보아 순장자는 애초엔 주 피장자 측면에 안치했거나 목관이나 목곽 위에 두었던 것이 나중에 관이 무너지면서 현재와 같은 상태로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녀가 함께 누워있는 상태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도 있다. 현장을 둘러본 한 고고학자는 "인골 중에서도 두개골은 얼마든지 후대 관이나 곽이 무너지면서 위치를 이동하기 때문에 그 위치로 순장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 "시신의 매장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갈비뼈나 엉덩이뼈 위치를 보면 위쪽 인골이 완전히 아래쪽 인골을 내려다보면서 엎어진 상태로 포개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인골 출토 상태로 보면 아래쪽 피장자와 위쪽 피장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포개진 상태로 안장됐음이 확실하며, 그들이 만약 남녀라면 교합하는 행위를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1호 무덤뿐만 아니라 덧붙임무덤인 2호에서도 금귀걸이와 은허리띠, 비취색 곡옥과 청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 등 장신구가 출토됐다. 은허리띠는 띠고리와 띠끝장식, 30여 개의 띠꾸미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고리부분에 정교하게 용을 형상화한 문양이 있고, 띠꾸미개 장식이 독특한 문양을 하고 있다.

유적에서는 현재까지 움무덤 3기, 덧널무덤 11기, 돌무지덧널무덤 7기, 독무덤 1기 등 24기의 신라 무덤이 조사됐다. 경주 시내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라 초기 덧널무덤 중 상당수가 한곳에서 확인된 것. 화려하고 정교한 금'은 장신구와 말갖춤 등 각종 유물은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영기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은 "비록 왕릉급 무덤은 아니지만, 중상위 계층 신라 귀족들의 모습을 담고 있어 앞으로 신라 무덤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움무덤: 특별한 시설 없이 땅을 파서 시신을 묻는 무덤

*덧널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

*돌무지덧널무덤: 덧널 위에 돌을 쌓고 다시 흙을 덮어 만든 무덤

*독무덤: 크고 작은 항아리 또는 항아리 두 개를 맞붙여 관으로 쓰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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