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안전은 습관이다

얼마 전 아찔한 경험을 했다. 밤 10시쯤 자동차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앞에 시커먼 물체가 지나가는 것이 보여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더니 10대로 보이는 학생 2명이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었다. 당황하게 하는 장면은 이어졌다. 학생들은 뛰지 않고 걸어서 차도를 가로질렀고 무슨 일인지는 관심도 없는 듯 자기들끼리 낄낄 웃으며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찰나에 한눈을 팔았다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연결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같은 보행자뿐 아니라 운전자들의 모습도 위태로워 보일 때가 많다. 운전을 하다 보면 바로 옆에 주행하는 차량 운전자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이 쏠려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위험'이 우리 주위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안전해졌을까'라고 자주 되뇌게 된다. 1년 전 우리는 감당하기 버거운 '인재'(人災)를 목격했다. 무고한 학생과 승객 3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사고 직후, 생존자나 유가족은 물론, 수많은 시민이 직'간접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했다.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안전' 쓰나미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1년 동안 우리는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고 안전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는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안전해졌을까'라고 자문하면 여전히 의문 부호가 그려진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답변이 가장 적합하지 아닐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곧잘 비상계단을 이용할 때가 많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방화문이 열려 있는 층이 적잖게 눈에 띈다. 방화문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독 연기가 위'아래층으로 쉽게 번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안전 장비로 평상시에 항상 닫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문을 열고 닫기가 번거롭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누군가 열어놓고 가는 것이다. 더욱이 소방전이 있는 복도에는 자전거나 각종 물품들을 쌓아놓는 집도 적잖게 보인다.

비단 이는 우리 아파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형마트 등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할 때 비상구 위치 정도는 확인하는 것이 필수인데도 이를 지키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11월 한 언론사가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확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시민 개개인의 안전 불감증을 재차, 삼차 논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시민들의 안전의식보다도 안전에 대한 행동수칙을 습관화하지 못한 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한 대비는 의식보다도 습관이 우선돼야 한다. 의식은 망각될 수 있지만 습관은 쉽게 망각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어릴 때부터 위험 상황별 대처요령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받는 것이 필요하다. 성인 또한 정기적으로 교육 및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전을 위한 대비가 몸에 밴다면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순간순간 반사적으로 나올 수 있다. 방화문을 으레 닫고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을 가면 먼저 비상구를 확인하는 등의 행동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새삼 1년 전 '세월호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한 미국 교포의 인터뷰 내용이 떠오른다. 그가 한 호텔에 묵고 있을 때 화재 경보가 울렸고 호텔 안에 있던 모든 숙박객은 '호텔의 비상 대피 원칙에 따라 대피해 주시기 바란다'는 직원의 말에 즉각 대피했다. 당시 불이 난 정황이 없어 누가 봐도 경보기가 고장 난 상황인데도 모두가 대피 장소에서 경찰과 소방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안전에 대한 습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강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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