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은 부활대축일이었습니다. 부활대축일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이날 신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장엄한 전례를 통하여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부활을 목격한 후 그분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분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그분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서가 말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신앙은 성경과 전통을 통해 교회 안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오늘날까지 전달되고 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당신을 박해하고 배척하였던 바리사이파, 율법학자와 유대교의 사제들 앞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권세가와 유력가들 앞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로마의 지도자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으면 그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줄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한순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무시하던 당신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당신을 스승님,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당신을 따랐지만 막상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고 유대교의 사제들 앞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당신을 버렸던 사람들입니다. 당신을 배신했던 그 제자들 앞에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난 것은 21세기의 경제 논리로 보면 참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이 매스컴의 기자들 앞에 나타나시어 부활에 대한 기자 회견을 한다면 한 순간에 당신 부활을 알릴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이 객관적인 하나의 사건을 넘어서서 제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사건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 사람들이 그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분이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객관적인 사건을 넘어서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향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사건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당신에 대한 겨자씨만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로써 부활은 죽으셨던 예수님이 살아난 사건만이 아니라 죽어야만 할 우리 모두가 신앙을 통해 새롭게 살 수 있으며, 죽음을 넘어서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까 24,36)라고 인사하셨습니다. 평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모든 존재는 죄와 불의로 인해 빚어지는 고통과 죽음 앞에서 평화를 누릴 수 없으며, 오직 그것들을 넘어서야만 가능한 것이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불의가 빚어낸 것들을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넘으셨다는 것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셨고 또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나누어 준 평화를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저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끼리 나눌 것이 아니라 죄악과 욕망에 의해 빚어진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부활을 향한 행진이며, 평화의 꽃밭을 일구어 가는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주님의 인사가 세상 모든 곳에 울려 퍼지도록 새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김명현 대구 비산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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