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청이 1907년 철거된 대구읍성의 옛 터와 읍성 해체로 없어졌다 다시 모은 성벽돌 400여 개의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 특히 2017년 대구읍성 철거 110주년을 맞아 옛 읍성을 상징할 만한 적절한 활용거리 마련에 고심 중이다.
중구청은 지난 2008년부터 '대구읍성 돌 모으기 운동'을 펼쳐 시민들의 협조로 지금까지 곳곳에서 흩어졌던 400여 개를 수습해 8년째 보관하고 있다. 이 읍성돌은 도심 재건축 공사장이나 건축물 철거 공사 현장에서 나왔거나 가정과 식당 등지의 정원석과 계단 등으로 사용되던 것들이다.
중구청은 또 지난해부터 대구읍성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구청은 읍성돌이 나온 읍성터 일부 구간에 '거리박물관'을 만들 계획 아래 설계 용역단계라고 한다. 아울러 대구시민회관 부근에 읍성 조형물이나 대구상징 미니어처, 읍성돌 전시 박물관 건립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구읍성은 도시화로 옛 모습대로 복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은 성벽돌을 역사와 어울러 제대로 활용하면 그 가치는 충분하다.
대구읍성은 잊어서는 안 될 슬픈 역사가 있는 스토리텔링의 현장이다. 그리고 뛰어난 공직자를 되새길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토성을 대신할 새 성이 필요했지만 짓지 못했다. 병자호란 때 청(淸)이 '옛 성이나 새 성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라'고 강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응수 경상도관찰사의 설득과 지혜로 1736년 대구읍성이 완성됐다. 그 뒤 1907년 일제 앞잡이였던 조선인 대구 군수에 의해 영원히 사라지는 수난을 겪었다.
공직자의 본보기 사례도 있다. 축성 과정에서 조정지원 없이 마련한 독특한 예산 확보와 오늘날 공공근로 같은 인력수급 방식이 사용됐다. 이는 뒷날 경기도 수원 화성축조 때 모델이 됐다. 현명한 목민관 덕택에 백성의 별다른 원성 없이 2.6㎞ 여의 대구읍성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읍성에 얽힌 사연과 역사를 바탕하면 2012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대구 근대골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당시 4개의 큰 성문과 2개 작은 성문을 잇는 2천650m를 되살리는 것이다. 400여 개 읍성돌을 일정 간격으로 옛 성터에 설치해 부근의 사연과 연계한 읍성 한 바퀴 돌아보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구 근대골목에는 발굴을 기다리는 자원이 여전히 많다. 보다 광범한 사료 발굴과 의견수렴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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