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득주도성장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을 들고나왔다. 이를 간단히 말하면 '임금 인상→가계의 구매력 향상→내수 촉진→기업 투자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임금 인상의 주체인 기업이 그럴 여력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사례가 그런 물음에 적절한 해답이 될 듯하다.

포드는 1914년 자기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일당 5달러로 올렸다. 이는 당시 동종업계 평균보다 두 배나 많은 것이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산업계에서 시도된 가장 어리석은 행위"라고 했지만, 노동자도 자동차를 살 수 있을 만큼 소비 여력을 높여 미국의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포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도입 등 생산 방법의 혁신과 경영 효율성 개선으로 생산성을 향상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임금 인상은 생산성 향상이 낳은 과실이지 생산성 향상이 임금 인상의 결과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임금 인상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 임금보다 높은 임금은 종업원의 충성도를 높여 고용주에게도 득이 된다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경우가 현실에서는 매우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임금 인상이 생산성 향상의 만능키라면 망하는 기업이 나올 수가 없다. 빚을 내서라도 임금만 올려주면 생산성 향상으로 그 빚보다 훨씬 큰 이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 높은 임금으로 재미를 본 포드도 1930년 대공황이 닥치자 임금을 대폭 삭감해버렸다. 기업인들에게 임금을 삭감하지 말라는 후버 대통령의 부탁을 받아들여 다시 임금을 올렸으나 급격한 수지 악화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을 하자"는 '새로운' 성장 이론을 폈다. 이는 듣기는 좋지만 가능하지 않은 포퓰리즘의 전형이었다. 일자리는 성장이 돼야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순서는 절대로 역전될 수 없다. 문 대표가 새로 꺼낸 '소득주도성장론'도 기업의 임금 인상 여력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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