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인문학으로 배우는 삶의 긍정성

▲유 가 형
▲유 가 형

전화기 벨이 울리고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다. 삶과 생활에 지친 이들의 고민과 어려움이 선을 타고 안타까운 소리로 전해져 온다. 생명의 전화로 많은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주로 우울하고, 화가 나고, 절박함이 묻어 있는 것이 많기에 때로는 절망이 걷잡을 수 없이 마음에 번져, 나 스스로도 온종일 방황할 때가 있다. 이들이 처한 어려움 가운데 많은 것들이 결국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된다.

그들과 나에게 꼭 필요한 삶의 태도가 하나 있다면 바로 삶에 대한 무한 긍정이다. 긍정의 힘이야말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이겨내는 바탕이 되기에 그 에너지는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삶에 대한 긍정성을 회복하게 도와주는 일은 생명의 전화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삶에 대한 긍정성은 총체적으로 우리들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과 지혜, 그리고 삶에서 한발 비켜서 보는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 우리가 도움을 얻어야 할 곳이 바로 인문학이다. 학교에서 배워야 할 이 분야가 요즘 많은 곳에서 새삼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 수성아트피아에서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 인문학 강좌에 다녀왔다. 참석자 100여 명 대부분이 학생과 그 부모들이었다.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고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강연이 마침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것이어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에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진지함으로 서로 터놓고 소곤거리는 풍경은 오랫동안 내가 상상하던 가족의 모습이었다. 아테나의 지혜와 프로메테우스의 용기, 에로스의 사랑과 디오니소스의 자유분방함을 배우며 아이와 부모는 더욱 풍성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여기서 얻은 삶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는 아이와 부모의 미래에 든든한 자양분이자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어린이 인문학 강좌에서는 앞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황선미와의 만남, 야구선수 양준혁의 꿈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학교가 아닌 생활 속에서 인문학으로 느끼고 배우는 삶의 가치는 우리 앞에 다가올 생의 대부분을 지탱하고 어려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삶의 자세로 체화된다면 많은 이들이 생명의 전화를 거는 사례도 줄어들 것이다. 인문학으로 함께 대화하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 봄꽃처럼 화사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꿈꿔본 아름다운 날, 나의 마음도 희망의 꽃망울을 머금은 듯 새롭게 설레기 시작했다.

(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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