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큰 도랑 파서 위기 넘겨야

성완종 메모, 대통령 청렴성 정조준

방어책 세워야 저승사자 피할 수 있어

타이밍 잘 살려 국정 중단 막기를

12일 오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자원개발 관련 비리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의원(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대해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성완종 메모에는 친박인 허태열 유정복 홍문종 김기춘과 친이계 홍준표 그리고 부산시장 이름 옆에 각 7억에서 1억 혹은 10만달러라고 적혀 있고, 이병기 이완구는 이름만 적혀 있다.

법학자들은 '줬다'라는 메모만으로 유죄가 된다고는 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정치자금이 오간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는 '사자(死者)의 메모'이기에 결백과는 상관없이 거명된 8명은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제3의 문서' 발견 여하에 따라서는 겨우 진정되나 싶던 정국을 위기국면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고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15년 전인 2000년에 충청포럼을 설립해 회장을 맡으면서 정치권 인사들과 마당발 교류를 가졌다. 3천500여 회원을 거느리고, 호남향우회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충청포럼을 배경으로 고인은 때로는 정치권에서 특정업무를, 때로는 후원을 맡았다. 2003년에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특보단장을 맡았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선진통일당 후보로 지역구 의원(서산시 태안군)이 됐으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금방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고인은 참여정부와도 인연이 깊다. 두 차례 특별사면 혜택을 받았다. 한 번은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2005년 석탄일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고, 그해 9월 또다시 참여정부의 권력형 비리인 행담도 개발에 연루됐으나 불과 몇 달 뒤인 연말에 특사로 나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무슨 연유에서인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기자회견을 않고 있다.

노무현정부의 특별사면을 거듭 받은 고인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말자 인수위원으로 등장했다가 이번 해외자원개발 비리까지 연루되어 수사를 받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역대 정권마다 위기를 잘 넘겼으나 이번에는 통하지 않자,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박근혜 주변인만 꼭꼭 집어서 의혹을 제기했다. 거명된 인사들은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후원금에서 1백%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정치인들의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성완종 의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검찰은 성완종 메모의 실체와 경향신문 50분 녹취록의 전모를 신속하게 파악해야 한다. 경향신문은 50분 녹취록의 7%인 3분51초만 공개하고 있다. 언론이 정치판처럼 놀아서는 안된다.

명심해야 할 것은 행정부의 미숙한 위기 대응 능력이 참사를 키운 세월호 사태나 광우병 괴담을 퍼뜨린 촛불시위처럼 이용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중 농담 중에 우리나라에서는 부부가 이혼해도 대통령 탓이라는 게 있다.

그래도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청렴성 하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부정과 비리를 일소할 적임자로 알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비리척결을 하지 못하면 영원히 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악재를 그대로 안고 가서는 길을 찾기 어렵다. 참인지, 거짓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과거의 일 때문에 또다시 국정의 발목이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역없는 수사와 함께 대통령은 어떤 쓰나미도 버텨낼 수 있는 큰 도랑을 쳐야 한다. 큰 도랑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은 스스로가 대통령과 국민을 위해서 과감한 진퇴를 고려해봐야 한다.

그런 결정도 세월호 사태 때처럼 타이밍을 놓친 뒤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국민적 의혹으로부터 결백 여부를 밝히기도 전에 국정은 또다시 난도질당한다. 그러면 정권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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