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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골목길 도시다] <2>전국 유일 대중음악 스토리텔링 골목길, 김광석 다시 그리기

음악 있는 골목 뒷길 아닌 추억

매일 전국에서 수천 명이 방문하는 김광석길.
김광석길의 사진 촬영 명소인 벽화.
매일 전국에서 수천 명이 방문하는 김광석길.
김광석길의 맛집 로라방앗간과 전국구 인기 메뉴 치즈떡도그.
김광석길의 사진 촬영 명소인 벽화.
김광석길의 맛집 로라방앗간과 전국구 인기 메뉴 치즈떡도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대표 관광지 100곳'을 발표했다. 대구에서는 골목길만 3곳이 이름을 올렸다. 근대골목과 안지랑 곱창골목, 그리고 김광석(1964~1996)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의 골목길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이다.

근대골목은 '역사'가, 안지랑 곱창골목은 '맛'이 소재라는 점에서 여느 유적지나 먹을거리 골목과 함께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김광석길은 좀 특이하다. 위인전 속 인물이 아닌 한때의 대중가수가, 오래된 민요나 가곡이 아닌 겨우 20년 전의 대중가요가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전국 곳곳에 가요를 만들고 또 부른 작곡가나 가수의 동상이며 노래비가 있기는 하지만, 김광석길처럼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사례는 없다.

◆전국 유일 대중음악 스토리텔링 골목길

김광석길과 비슷한 사례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국 록 밴드 '비틀스'가 횡단보도 위를 걷는 콘셉트로 앨범 '애비 로드'의 표지 사진을 찍어 유명해진 런던 애비 로드가 있다. 역시 비틀스의 앨범명에서 이름을 따 왔으며 멤버 4인의 고향인 리버풀을 둘러보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도 유명하다. 사실 대중음악 스토리텔링은 세계 팝 시장을 미국과 양분하고 있는 영국의 중요한 관광자원이고, 비틀스가 중심에 있다.

물론 단순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김광석도 비틀스만큼 매력적인 대중음악 스토리텔링으로 구축되고 있다. 특히 김광석의 탄생 50주년이었던 지난해를 중심으로 김광석의 노래가 TV 음악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고, 김광석은 '반짝'하는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문화 코드로 떠올랐다. 예컨대 김광석과 비슷한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중장년층이 오리지널 통기타 및 하모니카 버전의 김광석 노래를 향유한다면, 요즘 청년들도 최신 가요의 문법으로 편곡된 김광석 노래를 듣고 또 따라 부르고 있다.

가요 시장만 봐도 김광석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꾸준하다. 최근 김광석 4집과 김광석이 속해 있었던 밴드 동물원의 1'2집이 재발매됐다. 후배 가수들이 헌정의 의미를 담아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부른 '오마쥬 김광석: 나의 노래' 앨범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리즈로 발매됐다. 뮤지컬과 출판계도 김광석 관련 공연과 책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이쯤 되면 골목길에 녹여낸 김광석 이야기는 굳이 더 포장하거나 강조하려 들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다양한 세대로부터. 요즘 김광석길에 가면 남녀노소 다양한 방문객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주말에는 전국에서 하루 5천 명이 넘게 찾는다.

◆70년 역사 방천시장의 새 활력소, 김광석길

김광석길이 있는 방천시장은 1945년 해방 후 일본과 만주 등에서 돌아온 이주민들이 장사를 하며 형성된 시장이다. 신천제방을 따라 조성돼 '방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0년대 전후까지만 해도 싸전(곡식 파는 가게)과 떡전이 유명했고, 한때 점포 수가 1천 개가 넘는 대구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었다. 1988년 8월 17일 자 한 신문 기사에서 전국의 쌀값을 점검했는데, 대구에서 기준이 된 곳이 서문'칠성'방천시장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방천시장은 도심공동화의 여파로 점점 쇠락했다. 그러다 대구 중구청이 주도한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2009년), 문전성시 프로젝트(2009~2011) 등을 거치며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또 전국구 관광 명소로 변모했다. 그 옛날 갈 곳 없던 이주민들이 신천제방을 따라 터전을 형성했다면, 지금 방천시장을 활성화시킨 것은 역시 신천을 마주 보고 길게 이어지는 김광석 벽화다. 김광석의 앨범 이름 '다시 부르기'를 변주한 '다시 그리기'라는 주제로 그려진 벽화들이 이어지는 골목길, 바로 김광석길이다. 2010년 90m 구간으로 시작, 계속 벽화 작품 수가 늘어나 지금의 수성교~송죽미용실 350m 구간으로 완성됐다. 현재 벽화 작품 수는 80여 개다.

◆김광석 멜로디 맴도는 골목길

김광석길은 벽화에다 김광석 조형물, 골목방송스튜디오, 27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까지 더해져 김광석은 물론 김광석의 '음악'도 알리고 있다. 음악으로 김광석길의 취지를 이어 나가고 있는 명소로 복합문화공간 '유칼립투스'가 있다. 악기 우쿨렐레를 배우고 구경할 수 있는 곳이며, 대구에서 우쿨렐레 연주자 및 동호인들이 모이는 메카이기도 하다. 종종 깜짝 공연을 펼치고, 일요일에는 방문객들에게 하루 완성 강습도 제공한다. 구근재(42) 씨는 3년 전 김광석길에 이 공간을 차렸다. 그는 "김광석과 우쿨렐레는 닮았다. 반짝 유행하다 사라지지 않고 계속 대중의 호감을 얻고 있다"며 "수년간 김광석길의 변화를 지켜보며 긍정적인 인상을 얻었다. 김광석길은 김광석을 주제로, 넓게는 음악을 주제로 추억과 현재를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골목길"이라고 했다.

또 다른 명소는 방천시장에서 동성로 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면 있는 복합문화공간 '아트팩토리 청춘'이다. 2012년에 문을 연 이곳은 재즈와 록 등 음악 공연이 전문이다. 절친 김광석과 함께 밴드 '동물원'으로 활동했던 김창기가 지난 1월 새 앨범 발매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시작지를 대구로 정해 아트팩토리 청춘을 찾기도 했다. 또 이곳에서는 매년 김광석 관련 전시 작품을 공모하는 '김광석, 그리고 그리다'를 개최하고 있다.

◆방천시장 옛 명성 다시 한 번?

한때 싸전과 떡전으로 유명했던 방천시장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잇고 있는 곳도 김광석길에 있다. 로라(롤러, 분쇄기)로 쌀을 빻고 떡을 뽑아 파는 가게, '로라방앗간'이다. 원래 이름은 '시장방앗간'이었다. 1983년 문을 연 이곳은 방천시장의 쇠락과 함께 한동안 명맥만 유지했다. 그러다 외할머니 배소임(81) 씨의 뒤를 이어 외손자 박근태(31) 씨가 운영하며 김광석길의 명소가 됐다. 박 씨는 방천시장에서 구입한 쌀로 떡을 만들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떡볶이로 팔고 있고, 최근에는 치즈떡도그 등 신메뉴를 개발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밖에도 김광석길 및 방천시장 일대에는 이색적인 카페, 식당, 공방 등이 수십 곳 들어서 있고, 또 속속 생겨나고 있다. 양수용 대구 중구청 복지문화국장은 "대구에는 김광석길을 비롯해 관광에 방점을 두고 변모 중인 골목길이 적지 않다. 그런데 골목길의 외관이 새로워지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주민과 상인 등 구성원들이 적극적인 자세와 신선한 아이디어로 골목길을 삶의 터전으로 다시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골목길 활성화의 필수 조건이다"고 했다.

글 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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