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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꽃은 낙화를 슬퍼하지 않는다

▲이 재 순
▲이 재 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대로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은 날이 여러 날 이어졌다. 나무들이 오종종 매단 꽃망울을 언제쯤 터트릴까 가늠하며 일요일 아침마다 수성못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일 먼저 매화가 드문드문 하얀 얼굴로 반겨 주었다. 그다음 주쯤에는 활짝 피었어야 할 매화가 마냥 그대로였다. 꽃샘바람이 불었고 꽃샘 눈도 쏟아진 탓이리라. 하지만 꽃눈들은 그 참에도 옴찔옴찔 준비운동을 하며 꼼지락꼼지락 바깥세상을 꿈꾸었나 보다. 곧 매화가 다투어 피어나고 산수유와 개나리들도 피어 주변을 노랗게 물들였다. 목련 꽃망울도 부풀 대로 부풀더니 이어 활짝 피어났다. 뒤이어 벚나무들이 가지마다 봉긋봉긋 꽃망울들을 한 짐씩 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찬바람 속에 가만히 서 있지만 봄을 준비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즈음 나는 줄지어 선 벚나무들이 언제 하나둘 망울을 터뜨릴까를 생각하며 수성못을 오갔다. 만발한 벚꽃들이 온 거리를 환하게 하고 그 아래를 역시 환한 얼굴로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꽃들이 순서라도 정하여 차근차근 피어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면 아름다운 꽃 세상을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리석은 바람이었다.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는가 했는데 어느 날 하룻밤 사이 꽃망울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다. 수성못 둘레길은 물론 두류공원 일대며 동촌유원지 거리, 앞산순환도로 등에서 만개한 꽃들은 천지를 꽃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바람에 살랑이며 저마다 궁궐 한 채씩 지어 뽐내던 벚나무들! 흰 구름 뭉게뭉게 이는 것 같던 그 장관도 잠깐이었다. 아침부터 는개가 내리더니 오후에는 바람까지 불고 비까지 내리는 날,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산을 들고 수성못으로 갔다. 꽃 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나무 아래를 서성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터트릴 때와는 달리 비 사이를 힘없이 낙화하는 모습을 보니, 사람살이 또한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꽃 피기는 한참이지만 꽃 지기는 잠깐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은 절정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미련 없이 내려서며 또 다른 준비를 한다. 꽃을 지운 그 자리, 무엇보다 소중한 씨와 열매들이 자리한다. 그 새로운 탄생을 위해 꽃들은 저마다 향과 색을 뽐내며 짧은 봄날 아름답게 피고 진 것이다. 남은 과업인 열매를 키우고 익히기 위해 잎을 피우고 뿌리를 깊게 하며 여름내 애쓴다. 그저 사람들만 쓸쓸해하고 아쉬워하고 있을 뿐이다. "삶이란 우리의 인생 앞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 존 호머 밀스의 말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어떠한 시기도 반갑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꽃들이 절정에서 한순간 무너져 내리며 새로운 결실의 여정을 시작하듯이….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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