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 고향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억에도 없는 엄마 뱃속이 가장 원초적인 고향이라면 그다음 고향은 비릿하고 달콤한 젖 냄새가 나던 어릴 때의 엄마 품이 아닐까? 그리고는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던 시골 마을을 일러 고향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고향이 없는 대도시 출신의 영국인에게 시골 고향을 대치하는 곳이 바로 코츠월드이다. 가져 본 적이 없으니 가볼 곳도 없고 갈 수도 없던 상상 속의 고향 같은 곳! 코츠월드를 그곳으로 여겨 영국인들은 사랑한다.
코츠월드 풍경을 사진 없이 글로만 간략하게 묘사를 한다면?'끝도 없이 이어지는 언덕 위에 펼쳐진 밭과 초록색 풀밭, 그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하얀 점 같은 수많은 양들, 그 사이에 쳐진 돌담과 나무담(hedgerow), 구름 한 점도 없는 푸른 하늘, 그 하늘 밑에 점점이 흩어진, 평화롭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모자라는 마을. 금방이라도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와 함께 문을 나설 것 같은 나지막한 돌집들'여기가 바로 코츠월드이다.
이곳에서도 사실 굳이 코스를 따져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로마인들이 세웠다는, 문자 그대로 목욕탕이라는 뜻의 온천도시 바스로부터 다른 끝에 위치한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랏포드 어펀 아본까지의 동서 길이 145㎞, 남북 60㎞의 약 9천㎢의 코츠월드라는 둘레 안에 있는 마을들은 모두가 그런 마을들이고 그 사이의 경치는 어디나 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마을마다 있는 골동품 가게와 토산공예품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다리가 아프면 300년은 됨직한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와 탁자가 놓인, 아주 수많은 사연이 있을 듯한 오래된 찻집에서 차를 한잔하여라! 코츠월드에서 나는 스콘 빵 위에 딸기잼과 더블크림을 발라 잉글리시 밀크티를 마시면 제격이다. 그리고는 오픈 카를 타고 돌담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바람에 머플러를 날리며 다음 마을로 달려가면 된다. 물론 자전거로 가면 더 좋고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가면 최고다. 유채꽃이 들판을 덮고 있는 절정의 코츠월드를 즐기면서 말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영국이 부강해진 이유 중에 몇 번째로 들어가는 영국 양모산업의 중심지가 바로 이 코츠월드이다.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영국을 정복하면서 가지고 들어온 양을 바로 코츠월드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펼쳐진 최고의 목초지 위에다 풀어놓았다. 양모 직조공들이 이 동네에 살았고 당연히 목장과 공장 주인인 부자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 근처에서 많은 영국 역사가 이루어졌다. 근처에 유명한 관광지들이 많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그러고 보면 코츠월드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위치에 있다. 런던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전체 면적이 넓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2, 3일 내에 전체 마을 30여 개를 다 돌아볼 수 있다. 물론 런던에서 당일 코스도 가능하다. 거기다 더해 코츠월드 동서남북으로 영국 최고의 관광지가 위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계의 대학교가 있는 옥스퍼드, 로마인들이 세운 명품 도시 바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죽은 스트랏포드 어펀 아본, 그리고 윈스턴 처칠이 태어난 블랜하임 궁 등이 그런 곳이다. 금상첨화로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명품 아울렛 비스터 빌리지까지 가까이에 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역사, 쇼핑, 경치까지 겹쳐져서이니 말이다.
코츠월드에는 특히 유명한 마을들이 몇 개 있다. 옥스퍼드 쪽에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버포드, 코츠월드의 베니스라는 버톤 온 더 워터, 올리버 크롬웰이 시민전쟁 때 찰스 1세의 군대를 물리쳐서 최종 승리의 무대가 되는 스토 온 더 월드 같은 도시가 바로 그런 곳이다. 그리고는 바이버리가 또 유명하다. 마을 물가에 있는 1380년 동네에서 나온 돌로 지어진 아링턴 로는 코츠월드 집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영국 여권 안쪽 표지에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원래 17세기부터는 인근에서 생산되는 양모 직조공 가족들이 살았다. 출입문이 하도 낮아서 몸을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다. 흡사 장난감 집처럼 아기자기한 집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예쁜 레이스로 장식된 창문 가에는 인형과 장식품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이 살긴 하는 것 같아도, 수십 번을 갔지만 한 번도 사람의 출입을 본 적은 없다. 일본 관광객들이 특히 많다. 히로히토 일왕이 1921년 영국 방문 때 바이버리에 묵었다고 해서 그렇다고 한다.
사실 코츠월드는 굳이 고향이라는 이미지 말고도 런던에서 가까우면서 전원적이고 아름다워 잉글랜드의 비버리힐스라고도 불린다. 영화배우를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영국의 유명인사들이 모여 산다. 찰스 왕자, 앤 공주 같은 왕족부터 케이트 윈슬렛, 휴 그란트 같은 인기배우 그리고는 모델 케이트 모스,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 화가 데미안 허스트 등이 금방 떠오른 인물들이다. 코츠월드 마을을 다니다 보면 정말 이런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코츠월드가 그런 곳이다.
이제 잉글랜드의 남쪽 바닷가 절경의 절벽과 빅토리아 시절 신혼여행지 브라이턴과 그 근처 영국의 정원인 홈 카운티 마을들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마을을 찾아보자.
재영 칼럼니스트'여행 작가
johankwon@gma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