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시력 잃어가는 유정현 씨

보이지 않는 눈…기댈 곳은 홀어머니 뿐

눈앞의 물건조차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흐려진 유정현 씨는 보호자인 어머니와 이모 없이는 끼니를 해결하거나 집 밖으로도 나갈 수 없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눈앞의 물건조차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흐려진 유정현 씨는 보호자인 어머니와 이모 없이는 끼니를 해결하거나 집 밖으로도 나갈 수 없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지난해부터 바로 눈앞의 물건조차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흐려진 유정현(가명'41) 씨. 혼자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끼니를 챙겨 먹지도 못해 불편함이 크지만,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다. 자신도 불편한 몸으로 아들과 손자를 돌봐야 하는 어머니,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은 매일 어둠 속에서 사는 그의 마음을 더 어둡게 만든다. "열심히 일하고 가족들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죠. 치료비 부담까지 가족에게 지워주는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아들

어머니와 정현 씨는 특별하게 만났다. 정현 씨가 세 살이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친자식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친자식보다 귀하게 키웠다. 스물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어머니에게 정현 씨는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저를 항상 친아들로 여기고 돌봐주셨어요. 이모님도 친조카로 대해 주셨고요.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정도로 큰 은혜를 입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둘뿐이었던 정현 씨에게 30대 중반의 소중한 선물이 찾아왔다. 그 후 아들 하늘이가 생겼다. 1.3㎏의 미숙아로 태어난 하늘이 걱정에 정현 씨는 석 달을 매일같이 병원에 들렀다.

하늘이가 3살이 되던 해, 정현 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하늘이의 엄마가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유부녀였던 것. 심지어 하늘이는 정현 씨와 다른 성(姓)으로 다른 사람의 아들로 호적에 올라 있었다. 숨겨왔던 사실을 들킨 하늘이의 엄마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충격은 말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죠. 혼인신고를 안 했을 뿐 아내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게다가 우리 하늘이가 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아이라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이의 엄마가 떠난 후 정현 씨는 홀로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하늘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오후 일찍 집으로 돌아와야 해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지인이 운영하는 공인중개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좁은 월세방에 살았지만 아들을 돌볼 수 있어 행복했다.

아들은 어린 나이에도 아빠 앞에서는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을 정도로 철이 일찍 들어버렸다. "미숙아로 태어나서인지 어릴 적 아픈 곳이 많았어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챙겨야 하고 병원에도 데리고 다녀야 하다 보니 살림은 갈수록 쪼그라들었죠. 그래도 하늘이가 크면 번듯한 직장도 구하고 살림도 나아지겠지 희망을 가지고 살았어요."

◆잃어버린 시력, 어두워진 가족의 미래

아들이 잘 커 주기만을 바라며 성실하게 살던 정현 씨에게 지난해 너무나 큰 불행이 찾아왔다. 눈이 심하게 충혈돼 병원을 찾게 됐는데 며칠 만에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눈앞에 있는 물체를 형태만 구분할 정도로 시력이 떨어져 버렸다. 어린 아들과 둘만 지내던 그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하늘이 엄마가 떠났을 때도 어머니가 하늘이와 저를 챙겨주시겠다며 함께 살길 권했지만 짐이 되는 것 같아 사양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니 어머니밖에 기댈 곳이 없더라고요."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안과병원 곳곳을 다녔지만, 정현 씨가 갑작스레 시력을 잃은 원인은 찾을 수가 없었다. 100만원이나 하는 주사를 맞으면 시력 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얘기에 정현 씨의 이모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치료비까지 댔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력 저하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비싼 주사도 그에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더이상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 정도로 유지 시켜주는 정도였다. "어머니에게도, 이모님에게도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에요. 이런 아들, 이런 아빠는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1년 가까이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정현 씨에게 보이지 않는 눈보다 더 걱정인 건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아들이다. 친자식보다 더 살뜰히 아껴주시던 어머니는 당뇨 합병증과 관절염 등으로 거동조차 어렵지만 아들과 손자를 챙기느라 아픈 곳이 점점 늘어만 간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하늘이의 호적 정리를 하려면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70만원이나 하는 검사 비용마저 정현 씨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다. "혼자서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가장이라 너무 미안해요. 하늘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하늘'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앉아서 걱정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