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인터뷰 전문가를 인터뷰하게 되다니. 8급 바둑이 아마 4단을 요리(?) 한다는 게 가능한가. 인터뷰는 힘든 작업이다. 상대의 속을 봐야 하는 데 연출된 모습을 실제로 오인할 수도 있다. 상대가 고수면 더 그렇다. 바로 남재일(51)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역발상을 했다.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는 뜻밖에 '쿨'했다. "그럽시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책에 대충 담아 놓았습니다."
공부 좀 하고 오라는 얘기로 들렸다. 바로 서점으로 갔다. 빨간 표지에 선명하게 찍힌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이란 활자가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지난 8년간 진보적인 매체에 기고한 글을 묶은 책이다. '유혹의 정치' '보수의 문법' '세월호와 작별하는 법' '채동욱과 윤리적 폭력''''. 대부분이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이다. 하지만 스타일은 문학적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섬세의 정신을 보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격렬한 구호와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비판의 풍토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어 보였다. 시민 저널리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남 교수를 만났다.
◆독특한 문체로 마니아층 거느려
남재일의 성향은 '좌클릭'에 가깝다. 스스로 '난 어느 진영(陣營)에 속해 있지 않다'고 하지만'보수'가 아닌 건 분명하다. 그는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본인은 진보라는 명명도 불편하단다. 거기에 너무 많은 규정과 재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적 진보? 그 정도 생각합니다. 생각은 자유주의와 사민(社民)주의를 오락가락하는 것 같고요. 그런데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 글쓰기에는 오히려 거북합니다. 뭔가 더 말하게 합니다."
그는 자신의 글이 상식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라고 한다. 겉은 정치비판의 형태를 띠지만 속은 보편적 윤리를 주장하고 있단다. 듣고 보니 책에서 본 독특한 그의 문체가 이해될 듯했다.
인문학적 통찰, 간결하고 직설적인 어휘, 만연한 일상의 폭력과 공적 가치의 허위에 대한 날 선 비판'''. 얼핏 보면 차갑고 건조하다. 그런데 행간에 묘한 따뜻함이 있다. 문학적 에세이로 대자보를 쓴 것이라고 할까?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일찍이 보지 못한 문체'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의 글은 날카로운 칼과 문양(紋樣)을 지닌 일본도였다. 등골이 서늘하게 시니컬하며 막판에는 소스라치게 놀란 독자들의 등을 토닥여주는 기이한 따뜻함이 있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처럼 글을 쓰게 됐을까? 본인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고하는 방식의 반영이고 살아온 습관의 흔적일 것'이라고 한다.
"저는 사회현상을 볼 때 그 안의 사람을 봐요. 특히 사회구조의 피해자나 권력과 충돌하는 개인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입장에서 보면 감정적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보게 돼요. 그런 걸 객관적으로 옮기려고 용을 쓰는 게 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건 딱 한 가지라고 한다. "독자들이 사회현상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되도록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당사자 의식을 갖게 되고, 개선의 실마리가 생기기 때문이란다.
◆세월호와 한국 저널리즘
그는 요즘 저널리즘과 대중문화 강의를 하고 있다. 문화비평은 거의 쓰지 않고 사회비판적인 칼럼을 주로 쓴다. 세월호 1주년을 맞아 언론보도에 대해 물었다. 그의 평가는 혹독했다.
"세월호 보도가 엉망이었다는 것은 기자들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재난보도준칙을 만들고 나름의 대응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서해 페리호 침몰사건이나 삼풍백화점 사건 때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단지 세월호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보도문제도 크게 부각된 것입니다. 세월호 보도는 한국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평소에 언론도 시민도 그냥 지나갔던 문제입니다."
그는 세월호 보도의 문제는 언론조직의 인정시스템(인간 행위의 가치를 평가하는 합의된 규범 체계) 자체의 문제라고 말한다. 기자들이 출세하는 '옳은 보도'보다 '회사에서 원하는 보도'가 유리하기 때문에 언론윤리강령을 알지만 준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과반수가 넘는 기자들에게 두 유형의 보도는 대립관계에 가깝다. 그런데 '옳은 보도'는 어렵다. 취재도 더 해야 하고 취재원의 저항도 거세다. 그러니 누가 굳이 '옳은 보도'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언론 상황은 최악입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탄압하니까 그랬지만, 최근에는 언론인들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앞장서 정권에 협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언론의 위기가 아니고 언론인의 위기예요. 결국 세월호 보도의 뿌리는 이런 인정시스템 자체라고 봐야 개선의 여지가 있어요."
그는 잘못된 인정시스템이 비단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식민지와 전쟁, 분단을 겪으며 굴절된 한국 사회 전반의 보편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인정시스템이 구축되려면 시민이 자기 삶의 형식을 만드는 정치과정의 주인으로 승리한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근대사는 외세를 등에 업은 부당한 강자에 억압당하는 경험만을 했다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가 시민이 승리한 최초의 정치적 사건인데, 그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민주화가 가져다주는 삶의 수혜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일상적인 삶의 정치를 강조했다. "시민들이 가만있으면 정부나 국가가 알아서 해줍디까? 세월호 보세요. 나부터 바뀌고, 내가 바꾸지 않으면 사회는 안 바뀐다는 생각을 시작해야 합니다."그는 이 한마디를 위해 그 많은 글을 써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남재일 교수는…
남재일 교수는 포항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때 대구로 나왔다가 대학을 서울로 갔다. 사춘기 때 도스토옙스키와 카뮈에 매료돼 잠시 소설가를 꿈꿨으나, 대학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로 갔다.
그에게 당시의 대학은 혼돈이었다. 캠퍼스엔 최루탄이 자욱했고 광장은 시국 강연으로 넘쳐났다. 시위에 가담하고 시국 토론에 참여해도 자기 일 같지가 않았다. 겨우 학점을 채워 졸업하고 군대로 향했다. 군대는 방황을 마감하는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다.
제대 직후인 1988년 그는 중앙일보에 들어가 문화부에서 방송, 문학, 영화 등을 맡았다. 하지만 기자생활 10년이 될 무렵 문득 회의가 왔다. 기자라는 직업과 '좀 더 긴 글을, 좀 더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욕망과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 때문이었다.
주저 없이 사표를 던지고 유학을 결심했다. 그런데 IMF가 터졌다. 진로를 모교 대학원으로 꺾어 거기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때 씨네21에 영화에세이를 썼고 대중매체 여기저기에 문화비평을 썼다. 이 글들을 묶어 문화평론집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를 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언론재단에서 3년여 저널리즘 연구를 하다 2008년 충북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초빙교수로 갔다. 이듬해 경북대 신문방송학과로 자리를 옮기면서 2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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