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오'촉 삼국 쟁패와 영웅호걸의 활약을 그린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오장원 전투는 그 최후의 절정을 이룬다. 서기 234년 촉나라 승상 제갈공명은 대군을 이끌고 위나라와 마지막 승패를 결정짓기 위해 오장원에 진을 쳤다. 위군의 총사령관 또한 공명에 버금가는 지략가인 사마중달이었다. 위군의 지구전에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공명은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모습을 본뜬 좌상을 만들게 하고 사후의 철수 전략을 남긴다.
공명이 숨을 거두고 촉군이 철수를 서두르자, 사마중달은 분위기를 간파하고 대대적인 추격전을 벌였다. 그런데 퇴각하던 촉군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반격전을 펼치는데, 죽었다던 공명이 수레 위에 점잖게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중달은 다시 공명의 위장술에 걸려든 것으로 착각하고 혼비백산 달아나고 말았다.
나중에야 죽은 공명의 나무인형에 놀라 달아난 사실을 깨달은 중달은 "향후 100년 동안은 세상 사람들이 이를 두고 나를 비웃을 것"이라며 통탄을 했다. 이 대목에서 나온 유명한 고사가 그로부터 1천700년이 넘도록 인구에 회자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死孔明走生仲達)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은 일은 수 년전 미국에서도 벌어졌다. 애플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죽은 후에도 경쟁사들을 소송의 굴레로 옭아매었다, 2012년 10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같은 업계 후발주자를 함정으로 몰아넣고 올가미를 씌워 고사시키기 위한 특허전을 치밀하게 세워뒀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사후에 벌어진 애플의 잇단 소송 사태를 보면 고인의 망령이 여전히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는 얘기에 수긍이 간다.
죽은 기업인의 메모가 산 권력자들을 무더기로 궁지에 몰아넣는 사태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의 늪에 푹 빠진 국무총리가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이판사판 배수진을 친 가운데, 여야의 유력 정치인과 고위 관료의 명단이 적힌 장부까지 나와 정치판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죽은 자의 메시지가 한국정치 발전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제갈공명과 스티브 잡스가 가히 놀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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