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원봉사, 세상과 만나는 새 통로

▲유 가 형
▲유 가 형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사명 아래 생명존중과 생명사랑 정신을 기반으로 훈련받은 자원봉사자들이 전화상담 및 지역 복지사업을 수행하는 곳, 생명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사명과 비전을 가지고 움직이는 곳이 바로 생명의전화다. 모든 사람과 생명체의 절대적인 존엄성과 가치, 그리고 위기상황이 곧 자신의 성숙과 전환의 시기가 될 수 있음을 믿기에 나는 지금껏 생명을 살리는 자원봉사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신념으로 삼고 일하고 있다.

전화상담을 할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기사가 나온 것을 알게 된 것은 30년 전 어느 신문을 통해서다. 우리 집은 가내수공업으로 경제를 일구어갔으므로 잠시도 허리 펼 날 없이 힘들었던 시기라 어디서든 작은 돌파구를 찾아 나 자신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때였다. 마침 자원봉사자 모집 기사가 눈에 띄어 찾아 나선 곳이 대구 중부교회에서 실시하는 시민 상담교실이었는데 140여 명이 수강한 것으로 기억된다. 정성덕 전 영남대의료원장을 비롯한 여러 강사님의 강의는 좁은 수로에 큰 돌이 굴러 떨어지듯 마음에 큰 충격과 울림을 주었고, 상담교실에서 돌아오는 길의 내 눈에는 한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건 아마도 강연의 내용들이 내게 참 많은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흔 살을 앞둔 젊은 주부로 끝도 없는 일에 지치고 시달리던 나에게 강의 내용은 한 줄기 복음과도 같았다.

잡다한 집안일로 스스로를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때였다. 나는 경남 거창의 산골 태생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1남 4녀의 장녀로 가풍이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자란 부끄러움 많고 말도 잘 하지 못하는 새침데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강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가 덩치 큰 골리앗인 데 비해, 나는 물맷돌을 던진 강단 있는 다윗이 아니라 그저 초라한 시골뜨기처럼 느껴졌었다. 무수히 던져지는 하나같이 예리한 질문에 가뜩이나 어리바리한 나는 기가 죽었다. 그때가 바로 넓은 사회를 향해 빼꼼히 첫걸음을 떼어 놓은 순간이었다.

내가 살던 집이 대구시로 편입되기 전의 칠곡지역이었으니 버스 편은 좋지 않았지만, 들은 강의를 음미하며 다음 강의를 기다리는 시간은 몇 주처럼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한 번도 강의에 빠진 적이 없어 3개월 후 생각지도 않은 '근면상'을 받으면서 나는 삶에 윤기를 더하는 감사를 온몸으로 느꼈다. 여름날 매미 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게 등목을 한 느낌이랄까? 어린 날 처음으로 박하사탕 빨던 생각은 왜 났는지…. 나는 그렇게 자원봉사자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고, 새롭게 나의 세계를 여는 첫닭이 울고 있었다.

(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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