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인문학] 인문학 위기론에 대한 단상①

현재 우리나라 인문학의 위기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효율과 시장만능주의가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인정 풍토를 고사시켰습니다. 일부 지방대학에서는 아예 인문대 학과를 폐과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대학이 다 인문 관련 학과를 갖춰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조광의 '오늘의 인문학을 위한 우리의 제언' 중에서)

너도나도 '인문학의 위기'를 말합니다. 위의 글은 2006년 9월 25일 전국 80개 인문대학장들이 이화여대에 모여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입니다. 10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똑같은 선언이 나올 것이라는 진단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때 인문학 진흥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에는 ▷대학이 소비자 욕구 또는 시장논리에만 영합하지 말 것 ▷중장기 발전방안을 기획'실천할 것 ▷인문한국위원회를 설치할 것 ▷인문학진흥기금을 마련해 지속적인 지원을 할 것 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후 '인문 한국'(HK) 사업이 10년 가까이 진행되었습니다. 인문학 관련 정책의 성과는 짧은 시간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과연 투자한 만큼 성과가 있었느냐는 문제는 여기서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진행된 것은 분명합니다.

몇 해 전 금융 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비리그 대학교수들은 뉴욕의 월스트리트나 영국의 롬바드 거리에서 세계 통화 정책을 주도하고 있던 사람들을 자신들이 잘못 가르쳤다고 반성하면서 경제적인 실용을 넘어서 인문학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도 인문학 담당 교수들의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학의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것을 모두 시대적인 흐름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대학 인문학자들의 위기라고 비꼬기도 합니다. 대학의 인문학 관련 학과가 통폐합되는 상황에서도 거리의 인문학은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대학 인문학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측면도 존재할 것입니다. 소위 상아탑 안의 인문학, 그들만의 인문학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상아탑 인문학이 지닌 학술적인 정체성도 중요합니다. 초심을 잃고 조금씩 상업성이 짙어지고 있는 거리의 인문학이 지닌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정부에서 공모한 인문도시 선정과 관련해 교육청 지원을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구만 하더라도 다양한 인문학 관련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 성격이 다르더라도 서로 연대하여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방법을 공동으로 개발한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나아가 시민을 대상화하는 일방적 강의보다 상호소통을 이끌어내는 쌍방향 프로그램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떠냐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 전공, 단체마다 존재하는 그들만의 문턱은 높았습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서로 벽을 쌓고 자신들의 정체성만이 전부인 양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비인문학적인 처사가 아닐까요?

최근 대구 인문교육에 대한 많은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정책이란 것이 긍정과 비판의 틈바구니에 존재하지만 비난에 그치는 언어들도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말했습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고요. 최소한 대구 인문교육은 단순히 고통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내 안의 고통을 넘어 실천하려고 합니다. 나아가 그 방향은 '나'나 '우리'의 이익에 있지 않습니다. '너'와 '그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비판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해주었으면 합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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