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조창현 한양대 석좌교수

지방정부 복지 분담금 과중…다른 나라는 중앙정부 90% 부담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김병준 교수가 조창현(오른쪽) 한양대 석좌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김병준 교수가 조창현(오른쪽) 한양대 석좌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조창현 교수, 그는 제2대와 제3대 중앙인사위원장(장관)과 제3기 방송위원장을 지냈다. 그 이전에 지낸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위원장까지 합치면 약 8년을 공직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행정학과 지방자치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교수이다. 10여 년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한 뒤 한양대학 교수로 귀국했고, 정년을 맞은 이후 지금도 이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다.

공직자로서 성공하기도 했지만 학자와 교수로서의 그의 공로는 더욱 크다. 독일 나우만재단과 함께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를 만들어 초기 지방자치 연구를 주도했고, 경실련 대표 등을 맡아 전국적 규모의 지방자치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실제로 지방자치와 관련된 많은 본질적인 문제들이 그에 의해 제기되었고, 수많은 학자와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그가 운영하거나 주도하는 연구소와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지방자치를 배우고 익혔다. 우리 지방자치의 상당 부분이 그의 고민과 노력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을 고민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은 지방자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은 그에게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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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왜 관심이 없나?

김병준: 말로는 모두들 지방자치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별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조창현: 다른 나라는 긴 시간, 피눈물나는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잘 안다. 또 어떻게 유지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도 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독립도 연합군의 승리로 주어졌고, 민주화 과정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김병준: 민주주의의 가치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그 토대인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도 낮다?

조창현: 그렇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무엇이 민주주의를 유지시켜 주느냐에 대한 인식도 약하고, 바로 그런 맥락에서 지방자치의 가치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김병준: 각종 비리와 비능률 등 지방자치에 워낙 문제가 많으니 그런 것 같다.

조창현: 잘못된 부분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야지 민주주의의 기반인 지방자치를 가볍게 보거나 부정해서 되겠나. 자치단체장들만 해도 그렇다. 밑바닥부터 검증을 받으며 자란 게 아니라 중앙정치 연줄로 한자리 얻다시피 한 사람들이 많다. 어찌 문제가 없겠나. 이럴수록 고개만 가로저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사람들이 들어가게 하겠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김병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시민들이 그렇게까지 하겠나?

조창현: 하게 해야 한다. 민주시민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독일을 봐라. 국가 예산으로 민주시민 교육을 시킨다. 나치 같은 급진 정권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짧다. 그만큼 더 배우고 익혀야 한다.

김병준: 사실 우리는 그런 나라보다 민주주의와 자치, 분권의 경험이 더 없다.

조창현: 독일만 해도 비스마르크가 통일하기 전까지 지방 세력이 권력을 갖고 있는 봉건국가였다. 중앙정부가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런 분권의 역사도 없다. 조선 500년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그 이후의 권위주의 등, 근현대사의 대부분이 권위주의적 중앙집권 체제였다.

김병준: 그만큼 시민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조창현: 미국도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예로 들면, 지역사회의 주인이 될 학생들에게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 의무를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게 없다. 일부 있어도 추상적인 내용만 형식적으로 가르친다.

김병준: 많은 사람이 대통령만 잘 뽑으면 되는 줄 안다.

조창현: 제왕적 발상에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지방자치가 바로 서고, 또 시민사회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될 게 없다.

김병준: 시민교육이 잘 진행되면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지방자치를 할 수 있겠나?

조창현: 똑똑한 국민이다. 그리고 에너지도 있다. 지금 지역사회를 보면 곳곳에 분쟁이 있다. 왜 한전이 들어와 철탑을 세우느냐 등, 할머니까지 나와서 싸운다. 자치를 할 수 있는 권리의식도 있고 동력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 조금 더 배우고 익히고, 또 적당한 조건만 갖추어주면 좋은 자치, 하고도 남는다.

▷사랑할 그 무엇이 있어야

김병준: 시민교육뿐만 아니라 제도 등도 잘 갖추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나?

조창현: 당연하다. 제도적으로도 지금은 큰 틀만 갖추어져 있는데 이것이 세세하게 잘 정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읍면동장도 선거로 뽑는 등, 지방자치를 일상화해야 한다. 민주적 덕성이 몸에 익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선거 자체가 너무 거창하다.

김병준: 선거를 일상화하면 행정적 효율이 떨어지지 않겠나? 지금도 선거가 많다고 한다.

조창현: 문제는 딴 데 있다. 행정효율만 해도 그렇다. 예산과 인사 등 모든 것을 중앙정부가 다 쥐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혁신을 할 수도 없고 해야 할 인센티브도 없다. 그러니 주민들도 혁신역량을 보고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지 않는다. 누가 돈을 더 얻어올까만 생각한다. 행정효율이 높을 리 없다. 형편이 이러니 지방선거도 지방선거가 되지 못한다. 모조리 중앙선거의 연장이 된다. 그래서 더 시끄럽고 폐해도 심하다.

김병준: 권한과 돈이 주어져야 한다는 말로 듣겠다. 그러나 권한과 돈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 이것이 누구에게 가느냐가 문제이다. 소위 지역 토호세력들의 배를 불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겠나?

조창현: 원래 토호는 그 지역을 사랑하는 세력이다. 왜 사랑하겠나? 자신이 아끼는 뭐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지방자치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함께 지역사회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지식과 정보 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 사회에서는 끼리끼리 해 먹는 세력이 되어 있다.

김병준: 왜 그럴까? 또 어떻게 하면 되나?

조창현: 중앙정부 책임이 크다. 검찰, 경찰, 세무서 등 지방에 나와 있는 중앙정부 관료들과의 유착이 그 뿌리이기 때문이다. 조세행정과 사법행정 등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운영해 이들 중 깨끗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게 해 주어야 한다.

김병준: 지역사회에 사랑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지방자치도 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조창현: 그래서 균형발전이 중요하다. 피폐한 지역에 누가 애착을 가지겠는가? 그런 점에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 등은 매우 잘한 일이다. 장기적으로 지역경제와 지역문화를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지역사회에 대한 사랑을 더 하게 할 것이다.

김병준: 그렇게 되면 자치역량도 높아진다는 말씀 아니냐?

조창현: 미국서 보면 아이비리그 일류대학을 졸업하고도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대학도 있고 문화도 있고, 변호사든 뭐든 일자리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조금만 공부해도 그에 맞는 일자리도 문화도 없다. 특별한 지역문화도 다 없어지고 있다. 그러니 애향심이 있어도 서울에 와 나그네로 사는 것이다. 알래스카나 시베리아와 같은 황폐한 지역에 무슨 자치다운 자치가 있겠나. 우리의 지방이 그렇다.

▷권한과 돈, 그리고 혁신역량

김병준: 돈과 권한을 지방으로 내려주고 조세행정과 사법행정 질서도 바로잡는 한편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도 하고… 이래저래 중앙정부가 해 주어야 할 일이 많은데 중앙정부가 순순히 이를 이행하겠나?

조창현: 특히 관료들이 문제다. 버릇이 잘못 들여져 있다. 국민의 통제 아래 관료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관료집단이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를 고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또 이를 고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병준: 돈이나 권한이 내려오면 제대로 쓸 능력은 있나?

조창현: 진정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단체장들이 있다. 혁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이들이 그런 분위기를 확산시킬 것이다. 문제는 이들을 받쳐 줄 우수한 지방공무원이 적다는 점이다. 중앙공무원에 비해 직급도 낮고 위상도 낮다. 그러니 우수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다. 인건비 총량을 규제하되 직급과 보수 등은 자유롭게 풀어주는 방식 등으로 우수한 인재를 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김병준: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지방정부에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 혁신을 일으켜 행정 영웅이 된 시정관리관이나 공무원들도 있다. 위상 등에 있어 연방 공무원과 별 차이가 없으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조창현: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재정국장 하던 와인버그는 레이건정부에서 장관을 했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의 경우 군의 과장이 사무관이다. 건축가나 엔지니어, 실력 있는 박사급 전문가 등, 지방자치단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충원할 수 있겠나?

김병준: 지역마다 인력수요가 다를 터인데 이런 부분도 감안이 되지 않고 있다.

조창현: 획일적이다. 직급과 직렬, 채용과 교육훈련 등 다 그렇다. 다른 나라의 경우 지방정부가 그 나름 독자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운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기도 한다. 뉴욕시 경찰학교, 즉 폴리스 아카데미가 바로 그런 경우 아니겠나.

김병준: 권한이 가고 자율권이 확대되면 일시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훈련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조창현: 지금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자치단체장들 이야기가 그래서 행사도 많고 축제도 많다는 것이다. 뭔가 하기는 해야 하는데, 이건 중앙정부에서 크게 막지 않으니까.

김병준: 돈도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빡빡한 살림에 복지와 관련해서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부분이 크게 늘어났다. 즉 중앙정부가 결정을 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어쩔 수 없이 매칭 펀드, 즉 분담금을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도시 자치구의 경우 복지 관련 지출이 50~60%나 된다. 재정적 자율성이 뚝 떨어졌다는 말이다.

조창현: 잘못됐다. 세계적으로 볼 때 중앙정부가 복지의 90%를 부담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방정부 부담이 너무 크다. 중앙정부가 담당해야 할 몫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준: 자치단체장들이라도 나서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영 그렇지가 못하다. 최근에서야 겨우 한두 마디 하는 정도이다.

조창현: 미국, 영국, 일본만 해도 자치단체장 연합조직이 엄청나게 세다. 입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부당한 일을 막곤 한다. 우리는 이것도 형식적이다.

김병준: 왜 그럴까?

조창현: 중앙정치와 중앙정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공천권부터 중앙당이 쥐고 있다. 또 중앙정부가 각종 국고사업 예산과 보조금을 쥐고 있고 폭넓은 인'허가권과 규제권을 가지고 있다. 꼼짝할 수 없다.

김병준: 참 어렵다. 권한도 없고 돈도 없다. 시민교육도 제대로 못하고 있고…. 지역사회와 시민들도 잘해야 하지만 결국 많은 것이 중앙정부가 잘 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 주신 것 같다.

조창현: 무엇보다 지역주민이 그 지역을 사랑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든 지킬 것이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좋은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지역주민들의 민주의식과 자치역량을 강화시켜 주어야 하고, 제도 또한 그렇게 다듬어 주어야 한다. 자기 고장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나라도 지키지 못한다. 자기 고장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인들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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