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있으면 대구시교육청 역점 사업 중 하나인 인문학 100권 읽고, 100번 토론하고, 1권 책쓰기에 대한 공문이 국어과로 많이 날아온다. 공문으로 온다는 자체가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들끼리는 입시나 취업을 위해서 인문학을 한다는 자체가 비인문학적인 것이 아니냐며 투덜거린다. 이것은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에 대한 공문을 받는 것은 싫지만 사람들의 삶에 인문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동의를 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삶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사는 방법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삶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꼭 교육을 받아야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교과서에 나왔던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의 어니스트나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갖바치와 같은 인물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어니스트는 항상 큰 바위 얼굴을 보며 명상을 하고,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충실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갖바치는 천민이지만 전국을 유랑하며 민초들의 삶을 속속들이 살펴보며 그들의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양반 자제들이 책으로만 보아왔던 성인들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조광조는 사회의 개혁 방안에 대해 갖바치에게 자문을 했고, 중종은 갖바치를 재상으로 낙점하려고까지 했다는 야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위대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그런 인물들의 근처에 가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고, 많이 배워야 한다. 그런데 학부모와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씩 대구교육청에서 선정한 인문학 추천 도서를 모두 읽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어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단테의 '신곡'이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책을 읽는 것이 효과가 있느냐, 혹시 논술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책을 읽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지만,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미미할 수도 있다고 약간 모호하게 답을 한다. 그러고는 아이의 배경지식이 아주 풍부하고,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우수하다면 괜찮다고 판단을 슬쩍 학부모에게 넘긴다. 사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고, 조금이라도 배경지식이 있는 것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며, 진도도 빨리 나간다. 생판 모르는 내용이 이어지면 독서의 효율도 오르지 않고, 내용도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 책이 두께까지 두껍다면 라면 받침으로 쓰이기에 아주 알맞게 된다.
지금 교육청에서는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이 실용적인 내용이 아니라 인문학이 중심이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교과서는 말하자면 인문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교과에서 배우는 내용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책을 읽게 하면 학생들의 독서에 대한 동기도 높고, 이해도 훨씬 빠르다. 미진한 내용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있는 더 읽을거리나 참고 자료를 스스로 찾아 읽게 된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서 니체의 사상이 어떤 철학적 흐름에서 나왔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니체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에 대해 해설하는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 되는 것이다. 체계적인 인문학 독서를 하려면 바로 학교 교과에서 시작을 해야 한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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