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라마보다 더한 성완종 정국
법은 공평, 죽음이 면죄부도 아냐
수사로 넘어가면 현직도 가차없어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인 성완종 리스트 정국이 연초 방영된 인기 드라마 '펀치'와 빼닮았다.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끌었던 SBS 주말드라마 '펀치'는 검찰청 반부패부 박정환 검사(김래원 분)가 죽음 직전 빼돌린 메모리카드가 극적으로 공개됨으로써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했던 법무부 장관 출신 특수검사 윤지숙(최명길 분)의 살인 마각(馬脚), 대권을 꿈꾸며 비자금 270억원을 조성한 현직 검찰총장(조재현 분)의 비리 전모,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사이에서 득 좀 보려다 정의로운 검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로 전락한 이하성 검사(온주완 분)의 독이 된 선택 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드라마 펀치와는 달리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관련된 비리 의혹은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은 메모에 적힌 8인과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모를 4인의 의리남 그리고 죽음 전날 만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야권 정치인 7, 8명 연루 의혹을 담은 또 다른 메모가 있다고도 하나 존재 여부가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돈 없이는 정치를 하기 힘든 현실에서 기업 후원금을 기대하는 정치인들이 태반이라는 점과 정상적인 경제행위보다 정치권 혹은 관(官)을 업고 회사를 키우려는 기업인이 적지 않음을 감안해보면 '자살 공격'과 같은 고인의 덫에서 벗어나기를 숨죽이고 기다리는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꽤 많으리라 여겨진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수사는 기획수사가 아니라 해외자원외교비리에 대한 수사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사자방(4대 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를 밝히라는 것은 국민적 요구였고, 자원외교에 대해서는 국정조사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감사원은 작년 말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해외자원외교에서 성공불 융자금(실패 시에는 융자금을 감면해주고, 성공했을 때만 원리금 이상을 징수하는 제도)이 지나치게 적게 회수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감사에 들어갔다. 경남기업 역시 석유공사를 통해 330억원의 성공불 융자금을 받았으나 100% 사업에 실패하고 갚은 융자금은 200만원에 불과했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경남기업의 이상한 자금 흐름과 1조원대 분식회계 혐의까지 파악했다. 막바지 수사를 직감한 고인은 법망을 벗어나기 위해서 각 방면으로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고, 죽기 직전에는 충청포럼 회원인 경향신문 사장과 통화를 한 뒤, 결국 이 신문사 기자에게 '녹음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마지막 인터뷰를 남겼다. 고인이 남긴 비망록과 하이패스기록 통화내역 등을 종합한 사건의 재구성이 막바지에 들어갔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정한 수사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완종 메모에 거론된 8명의 뇌물수수 의혹 금액은 총 15억3천만원과 10만달러이다.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수조원대에 달하는 방산비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방산비리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다고 봐주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솥뚜껑으로 자라 잡듯이 의혹만으로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실세라고 해서 봐주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실체가 드러나면 현직일 경우 더 가차없이 다루어야 하고 정치 혁신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나라가 거덜 날 듯이 호들갑스럽게 덤벼들어서도, 그렇다고 잊어버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망자에게 관대하고, 이성보다 감성호소가 더 잘 먹히는 우리네 정서상 말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드라마 펀치 마지막회 대사가 떠오른다. "법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죽음이 면죄부가 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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