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는 동구권의 슬로베니아 주변국에서부터 시작해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와 프랑스 등을 거치는 장장 1천200㎞ 길이의 대산맥으로서 초승달 모양으로 지중해까지 뻗어 있다. 약 7천만 년 전에는 바다 밑이었는데, 차츰 융기해 지금의 알프스 산맥을 형성했다. 해발 2,000m 지대에서 트레킹하다 보면 조개껍데기 화석을 종종 볼 수도 있다. 학창시절부터 치면 필자가 알프스와 인연을 맺은 지 25년 이상 되며 10여 년 전에는 알프스를 횡단하며 각 산군의 주요 봉우리들을 오르기도 했고, 매년 기회가 되면 알프스의 새로운 지역에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알프스와 함께하는 삶이지만 알프스를 제대로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아직도 못 오른 산들뿐 아니라 못 가본 계곡과 언덕들이 숱하다. 여전히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 나에게 알프스는 아직도 모험의 장이자 체험의 장이다. 이제는 시야를 좀 더 넓혀 우선 먼 곳에서 몽블랑 산군을 조망하고 다른 산군으로도 가보기로 한다.
코르동(Cordon) 마을 뒤 크로와(Croix) 언덕은 샤모니에서 멀지 않지만 최근에 알게 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가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지대인 살랑쉬 계곡 바닥에서 몽블랑 정상까지 가리는 것 없이 볼 수 있어 몽블랑의 웅장함을 쉽게 가늠할 수 있으니 나무만 보다가 마침내 숲을 보는 기분이 든다. 1786년 몽블랑이 초등(첫 등반) 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빙하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어 대도시인 안시의 주교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옛 그림에도 빙하는 용같이 생긴 거대한 괴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 미신이 아니더라도 크로와 언덕처럼 먼 곳에서 몽블랑을 지켜보면 여전히 그 위용에 압도당한다.
코르동 마을은 살랑쉬(Sallanches)라는 제법 큰 도시에서 멀지 않다. 휴가 시즌에는 마을을 오가는 버스가 운행되며 도보로 한 시간 숲 속 오르막을 오르면 된다. 승용차로는 15분이면 갈 수 있다. 서쪽으로 아라비스 산맥을 배경에 둔 크로와 언덕 동북면 산비탈에 자리한 아담한 산간마을 코르동은 관광화가 된 샤모니와는 달리 한적하고 깨끗한 알프스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산비탈에 목축을 하는 목가적인 풍경 너머로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알프스 산간마을은 대개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깨끗하게 정돈된 코르동의 거리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샤모니와 딴판이다.
18세기에 사보이아드 바로크 양식으로 소박하게 지어진 교회를 둘러보고 그 아래 빵집에서 장작으로 갓 구운 빵과 옆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로 몽블랑 산군을 지켜보며 간단히 한 끼를 때우는 맛에는 방랑의 맛이 배어 있다.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인 레 쁘레이(le Peray, 1,280m)까지는 산비탈의 목장과 통나무집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30분 오르면 된다. 승용차로 오를 수도 있는데, 비포장 길을 따라가면 작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주차장에서 한동안 전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 길은 한 시간 이상 올라야 시야가 트인다. 살랑쉬 계곡 위로 좌측에 펼쳐진 거대한 바위들의 장벽 로쉬 데 피츠에서부터 우측에는 몽블랑 산군의 만년설산이 펼쳐져 있다. 길이 좋아 가족 단위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데, 하산하는 그들을 지나쳐 30분 더 오르면 알파인 풀밭 언덕에 이른다. 이곳이 크로와 언덕이다. 전망 좋은 언덕에는 아담한 오두막들이 몇 채 있다.
나무라곤 없는 풀밭 능선의 동쪽 면에 띄엄띄엄 서 있는 오두막을 이 지역에서는 알빠즈라 한다. 여름철에 소나 양들을 키우는 목동들이 이용하는 통나무집들인데 요즘은 개조해 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20대부터 알프스와 인연을 맺은 필자에겐 몽블랑이 바라보이는 바로 이런 알파인 오두막에서 살고픈 꿈이 있다. 푸른 청춘을 만년설과 함께한 이들에게는 의미 있고 행복한 꿈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두막들은 대대로 대물림된 것들이기에 좀체 매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꿈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날지라도 버리고 싶지 않을 만큼, 몽블랑을 바라보고 있는 이 언덕 오두막들의 분위기가 편안하고 서정적이다. 알프스의 구석구석을 10여 년 이상 쏘다니면서 이토록 머물고 싶은 곳을 왜 이제야 봤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크로와 언덕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른다.
30분 정도 능선 위의 풀밭을 오르면 몽블랑 쪽으로 난 능선 하나가 있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아래로 내려가면 산행 들머리인 레 쁘레이인데, 한 시간 반 걸린다. 삼거리에서 30분 더 오르면 쁘띠 빠트르 비박산장(1,915m)이 나타나며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인 몽블랑 지역 일주 코스(TPMB)에 접어든다. 이렇게 좋은 전망을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면 크로와 언덕의 풀밭에서 하룻밤 캠핑을 할 수도 있다. 맨 위의 오두막 잔디밭에는 큰 나무통에 물까지 흘러내린다. 밤이 깊어지면 몽블랑의 만년설이 달빛에 빛나고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 아래로 알프스 계곡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이 환상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몽블랑 산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이보다 나은 곳은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장소다. 이곳에서는 몽블랑 산군의 일몰 풍경이 그만이지만 일출 또한 장관이다.
산행 안내=코르동 외에도 므제브나 꽁블루 등 몽블랑 산군 외곽의 전망 좋은 트레킹 언덕들을 오르는 산간마을들이 많다. 승용차가 있으면 산행 초입까지 접근이 용이하다. 대중교통은 살랑쉬나 러 빠예에서 산 아래 마을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여름 성수기에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다닌다. 일부 마을에서는 몇몇 전망대나 산행 초입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기에 관광정보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산행 기점이 되는 각 산악마을을 둘러보면서 그 마을의 특색들을 즐겨볼 만하다.
한편 크로와 언덕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원한다면 몽블랑 지역 일주(TPMB) 코스에 접어들면 된다. 크로와 언덕에서 30분 오르면 쁘띠 빠트르 대피소가 있으며 시계방향으로 돌아 3시간 가면 메이예르 산장이 있다. 몽블랑 지역 일주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 장거리 코스로서 알프스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알프스 전문 산악인 vall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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