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쉬이 잊고, 잊어야 할 것은 쉬이 잊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안전 불감증 역시 망각 때문에 나타나는 심리현상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지나간 일들을 모조리 기억한다면 인간의 기억 창고는 터지고 말 것이다.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라면 또 몰라도…. 그러나 세상살이가 어디 그렇던가? 괴롭고 힘든 일이 더 많지 않던가.
식물이나 동물도 잊기를 잘하나 보다. 남쪽 지방에서는 며칠 따스한 날씨가 이어지자 봄이 온 줄 알고 피기 시작한 꽃과 새순들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나온 개구리들이 얼어 죽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모두 꽃샘추위에 대한 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20℃를 오르내리는 기온으로 웅크렸던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며, 어느새 봄은 절정에 다다르고 세상은 온통 꽃 세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어딜 가나 노란 얼굴로 사람들을 반겨주는 민들레는 이즘 더욱 예쁘다. 산에, 들에, 길가에서 봐 주는 이 없어도 웃고 있는 민들레, 크고 화려한 꽃 속에서 납작납작 내민 노란 얼굴을 보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뜰이나 화단에 특별히 심거나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자리하여 빛을 발한다. 내려다보는 법이 없고 올려다 만 보고 살아가는 꽃, 누가 아름답다며 반겨주지 않아도 길가 모퉁이에서 방실방실 웃는다.
그런 민들레꽃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에 한 왕이 살고 있었는데, 신하나 백성들 앞에서 단 한 번의 명령밖에 내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한다. 왕은 군대를 통솔한다거나, 왕자나 공주의 혼례를 치를 때도 아무런 명령을 내릴 수 없어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언제 그 명령을 내려야 할까를 고민하던 왕은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만든 하늘의 별들을 원망하면서 복수를 결심했다. 몇 날 몇 달을 궁리한 끝에 마침내 단 한 번의 명령을 내린다. "이 못된 별들아! 모조리 땅에 떨어져 꽃으로 피어라! 내 너를 밟아 주리라." 별들은 주르르 땅에 떨어져 노란 민들레꽃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왕은 물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꽃을 마구 밟고 다니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런 연유라면 민들레는 운명적으로 밟히면서 피어나는 꽃이겠다. 사람들의 눈길은 뜸해도 벌, 나비들은 그 슬픈 전설을 아는 듯, 동그란 얼굴에서 종일 붕붕거린다.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 찬란한 봄날, 세상은 꽃들의 향연에 밝고 아름답지만 유독 사람들의 얼굴은 그렇지 못하다. 연일 나라 안팎의 절망적 뉴스 때문일 것이다. 이 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마음속에 먼저 아름다운 봄을 심어야겠다. 현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운명이나 과거에 지녔던 어떤 트라우마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슬픈 전설을 가진 민들레! 밟히면서도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용기와 끈기를 배우는 4월이었으면 한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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