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집'.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를 말한다. 복싱, 이종격투기 등 투기 종목에서 맷집은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척도가 된다. 맷집이 좋아야 흠씬 두들겨 맞다가도, 상대가 허점을 보이거나 지쳤을 때 역전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다.
비단 격투기 선수뿐 아니라 우리네 인생도 이 맷집이 좋아야 시쳇말로 '인생역전'도 가능하다. 비루(鄙陋,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하고 찌질했던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도 중'장년 또는 노년시절에 '역전 만루홈런'을 날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이들도 많다. 특히 대기만성(大器晩成) 유형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점이 인내심, 다시 말해 맷집이 좋은 특성을 갖고 있다.
맷집이라면 어딜 가도 나름 명함을 내밀 만하기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군 복무 시절을 되돌아본다. 논산훈련소-육군종합군수학교를 거쳐 50사단 소속 군수보급병으로 발령을 받았다. 자대배치를 받고 난 후 고난의 연속이었다. 행동이 느릿느릿할 뿐 아니라 계급사회에서 위-아래 구분없는 사고 등으로 7개월 동안 속칭 '고문관'으로 찍혀서 소속부대 병장'상병'일병들에게 돌아가며 얼차려를 받고, 때로는 많이 맞기도 했다. 이등병 5호봉 때부터 일등병 6호봉 때까지 동네북이 아닌 군대북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얼차려는 기본이고, 한 달에 몇 번씩은 독한 고참들의 샌드백(?)이 되어야 했다.
자대배치 후 7개월 정도 맷집이 유용했다. 나름 속으로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별명도 얻었다. '이등병, 권 대령'. 느린 행동과 싸가지('싹수'의 강원'전남 방언) 없는 말투 등으로 대대장'중대장'장교들'하사관들 사이에도 '악명높은' 인사가 되어 버렸다. 진급할 때도 다른 사병들과 달리, 준장(일병)-소장(상병)-중장(병장) 순으로 진급했다. 또 고문관이지만 '유쾌한 아이콘'이 됐다.
역시 하늘은 맷집이 센 내게 무심치 않았다. 일등병 말호봉 때부터 군생활은 일사천리로 폈다. 일명 '풀린 기수'라고 할까. 괴롭히던 고참들은 줄줄이 전역하고, 상병 4호봉 때부터 내무반장을 무려 7개월가량 했다. 그렇게 많이 얼차려를 받고, 맞았지만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일은 내 전공이 아니었기에 반대로 '완전 즐거운 내무반'을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군 인생역전에 성공한 개인 흑역사를 너무 길게 해서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맷집이라는 이 한 가지 메시지는 꼭 전하고 싶다. 요즘 들어 '갑의 횡포'에 대한 얘기들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을의 맷집'이다. 사실 갑의 횡포는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약한 개인이 기를 수 있는 건 분명 맷집이다. 때론 서럽고, 때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어~~쭈~~, 이쯤의 괴로움이야. 아무것도 아냐!'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그야말로 '인생! 뭐 별거 있느냐?'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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