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마트폰이 바꾸는 세상] 전화 걸기 전 '카톡' 먼저 "통화 괜찮나요?"

젊은 층, 통화가 더 어색해 "문자로 얘기하기 편해요"

2012년 10월 15일 '한겨레신문'에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당시 MBC 전략기획부장 사이의 비밀회동 대화록이 공개됐다. 대선 정국을 흔들어놓은 이 대화록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얻어지게 됐다. 이 대화록을 보도한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는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대화록을 입수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2012년 10월 8일 최 이사장과 다른 취재 건으로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끝낸 뒤 손윗사람인 최 이사장이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최 이사장이 스마트폰 '통화 종료'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고 책상 위에 두는 바람에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필 그날 MBC의 두 본부장과 최 이사장의 회동이 최 이사장의 스마트폰을 통해 들려왔고, 최 이사장이 전화 끊기를 기다리던 최 기자는 계속 전화를 들고 있다가 그 내용을 그대로 들어버린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전화예절은 물론이고 통화 패턴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큰 범주에서는 예전 휴대전화가 대중화될 때의 통화 예절과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터치패드로 작동되는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 때문에 또 다른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기자는 특종을 잡기도 했고, 어떤 이는 친구 사이가 살짝 섭섭해지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통화 예절과 통화 패턴에 대해 알아봤다.

◆요즘은 먼저 끊는 게 예의

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건 때문인지 요즘은 손윗사람이든 손아랫사람이든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이 용건이 끝나면 먼저 끊는 것이 스마트폰 시대의 전화예절이 되고 말았다. 터치패드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의 경우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철원(57) 씨는 "예전에는 폴더만 덮으면 전화가 꺼졌는데 지금은 통화 종료 버튼을 찾아 눌러야 하니 귀찮은 건 둘째치고 잘못 눌러 통화료나 이상한 요금이 더 나올까 걱정"이라며 "'먼저 끊어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속 편하더라"고 말했다.

◆아예 먼저 물어보고 건다

강민기(21) 씨는 친구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기 전에 미리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통화 가능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저도 친구들도 학생이다 보니 전화를 하고 싶어도 수업 중이거나 조 모임 등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물어보고 전화를 거는 경우가 많아요. 혹시나 하는 일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요."

이처럼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 때 상대방이 전화 통화가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도 최근 등장한 스마트폰 예절 중 하나다. 특히 수업이나 회의 등 상대방이 전화를 못 받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전화를 걸게 되면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민폐를 끼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10'20대들은 음성통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강 씨는 "친구들 대부분이 카카오톡이나 SNS처럼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소통을 하다 보니 전화 통화가 두렵다는 친구들도 주변에 더러 있다"며 "이런 친구들은 '음성통화가 어색하니 문자로 하자'고 말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여보세요"가 사라진다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가 기본 서비스로 등장한 이후 전화 통화를 시작할 때 당연히 하는 말이었던 "여보세요"가 사라지고 있다. 전화를 걸면 받는 사람이 "어, 왜?"라고 대답하거나 상대방이 손윗사람으로 전화기에 표시되는 경우에는 "네, 접니다. 말씀하세요"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권형기(36) 씨는 "스마트폰이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면 상대방의 전화에 당연히 내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을 거라 믿는 경우가 많다"며 "상대방이 '여보세요?'라고 대답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누구세요?'라고 말해버리면 상대방이 날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언짢아진다"고 말했다.

◆부재중 전화'읽지 않은 메시지에 대처하는 법

부부들 사이에는 부재중 전화에 대해 문자메시지라도 답을 주지 않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만 하고 바로 답하지 않으면 곧장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존재한다. 경찰 관계자는 "남편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라는 음성안내가 20~30초 만에 들린다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수 분 안에 답이 안 와 불륜으로 의심해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사실이 발신자에게도 통보되기 때문에 발신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된다는 것. 이처럼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와 '카카오톡의 대화 속 숫자'로 확인되는 수신 확인 서비스는 '즉각적인 대답'을 예의로 만들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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