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배신/ 댄 리스킨 지음/ 김정은 옮김/ 부키 펴냄
'자연'(自然)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그렇다면 '자연스럽다'는 의미는? 3가지 뜻이 검색에 떴다. 첫째,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둘째,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셋째,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 TV 광고처럼 부드러운 풀밭이나 폭포수 떨어지는 물웅덩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모델이 꽃과 나비와 함께 뛰어다니는 광경을 상상할 수도 있고, 무독성 유기농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면서 여가 시간에 자연을 찾아 캠핑을 떠나는 것을 '자연에 가까운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자연은 평화롭고 온화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문을 던지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온화한' 대자연의 이면을 수백 종의 다양한 동식물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탐욕, 색욕, 나태, 탐식. 질투, 분노, 오만이라는 인간의 7가지 죄악을 자연에 투영해 자연의 욕망을 새롭게 해석했다.
사실 자연은 삶과 죽음이 복잡하게 뒤얽힌 역동적인 드라마다. 저자는 이 드라마는 전적으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이기적인 전쟁에 의해 굴러간다고 설명한다. 에너지는 숙주에서 기생생물로, 피식자에서 포식자로, 부패한 사체에서 청소동물로 살아남아서 DNA를 전달하기 위해 끝없이 전쟁을 벌이는 생명체들 사이를 흐른다는 것이다.
보석말벌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했던 자연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보석말벌에게 쏘인 바퀴벌레는 아무 의지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말벌은 바퀴벌레의 더듬이를 잡아 개처럼 끌고 자신의 굴로 들어가 바퀴벌레의 몸속에 알을 낳고 땅에 묻는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곧장 바퀴벌레의 몸을 파먹기 시작한다. 애벌레는 가능한 한 바퀴벌레를 신선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바퀴벌레 몸 곳곳에 항균 물질을 분비하고 치밀한 순서에 따라 장기부터 갉아먹는다. 이런 치밀한 전략 덕분에 바퀴벌레를 몇 주에 걸쳐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끔찍한 사실은 애벌레가 성체 말벌이 되어 바퀴벌레 몸을 뚫고 굴 밖으로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퀴벌레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자연스럽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가. 하지만 살아 있는 숙주의 몸에 알을 낳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드문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숙주의 몸에 알을 낳는 동물을 '포식기생자'라고 부르는데, 곤충의 약 10%가 여기에 속한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하나의 이미지일 수 있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곳이 자연이다. 이처럼 자연은 때로는 아름답지만 대체로 잔인하며 추악한 피바다이고, 인류는 그 한복판에서 진화해 왔다. 저자는 그 생생한 진실을 ▷탐욕: 얼룩말을 죽이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얼룩말이다 ▷색욕: 고깃덩이 로봇, 서로를 탐하다 ▷나태: 기생충 낙원의 평범한 하루 ▷탐식: 먹고 먹히는 살벌한 먹이사슬 ▷질투: 도둑과 비열한 수컷 ▷분노: 자연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 ▷오만: 일어나라, 고깃덩이 로봇이여! 순으로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이 아무리 무자비하다 해도, 인간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눈앞의 먹이에 급급해 멸종 위기에 처한 고프 섬의 생쥐를 예로 들면서, 인간의 자연적 본능이 마치 지적 행동의 출발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인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냥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자부심'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304쪽, 1만4천800원.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댄 리스킨은?=박쥐 박사인 저자는 미국 앨버타대학을 졸업하고 요크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코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브라운대학과 보스턴대학의 생태학과 보전생물학 센터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디스커버리 캐나다에서 방영하는 세계 유일의 일일 과학 프로그램 의 공동 진행자이며, 여러 방송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첫 TV 출연작인 히스토리 채널의 는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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