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망(春望)
봄날 풍경-이병연(李秉淵)
버들잎, 느릅나무 잎, 보리수 잎, 파릇파릇
매화꽃, 살구꽃에, 배꽃들 울긋불긋
누른 새, 까만 새, 흰 새는 펄펄 날고
누른 고기, 붉은 고기, 아롱 고기 펄쩍펄쩍
큰 콩, 작은 콩은 첫 떡잎 쏙, 내미는데
작은 보리, 큰 보리는 하마 물결 일렁이네
그 가운데 물까마귀 어떤 놈인고 하면
오른쪽엔 매 발톱, 왼쪽에는 오리발로
밝은 달, 달 여울에서 옥 물고기 냅다 잡아
십리를 빗겨 날며 봄빛을 가른다네
柳葉楡葉榕葉靑(유엽유엽용엽청) 梅花杏花梨花明(매화행화이화명)
黃鳥玄鳥白鳥飛(황조현조백조비) 黃魚紅魚斑魚生(황어홍어반어생)
大豆小豆初出土(대두소두초출토) 小麥大麥浪已成(소맥대맥낭이성)
就中水烏何許物(취중수오하허물) 右爲鷹爪左鴨足(우위응조좌압족)
明月溪中抓玉尺(명월계중조옥척) 十里橫飛割春色(십리횡비할춘색)
[춘망(春望)]
*黃鳥(황조): 꾀꼬리. *玄鳥(현조): 제비. *黃魚(황어): 잉어과의 민물고기. *紅魚(홍어): 물고기의 일종. *斑魚(반어): 가물치. *大豆(대두): 콩. *小豆(소두): 팥. 小麥(소맥): 밀. 大麥(대맥): 보리.
떼사 사
사천 이병연(1671~1751)과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은 인왕산 밑에서 태어나 거의 일생 동안 함께 지낸 이심전심의 친구였다. 그들은 각각 시와 그림의 영역에서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겸재의 그림에 사천이 시를 쓰기도 하고, 사천의 시를 토대로 하여 겸재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들이 이처럼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 영역은 서로 달라도 실제 풍경을 사실대로 묘사한다는 예술 정신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술 정신은 이 시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봄이 돌아와서 이 세상 만물들이 우지끈, 다 들고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다. 동시에 그것은 한바탕 크나큰 잔치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지금 '천지간을 뒤덮는 큰 잔치'가 시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세상 나무들은 파릇파릇 연둣빛 잎을 내밀고, 이 세상 꽃들은 울긋불긋 환한 꽃을 피운다. 이 세상 새들은 허공으로 펄펄 날아다니고, 이 세상 물고기들은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이 세상 콩들은 이제 막 떡잎을 내밀고 있는데, 이 세상 보리들은 성큼 자라나서 이랑마다 푸른 물결을 이룬다. 봄기운이 몰고 온 미친 흥을 타고,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얼씨구나 신명난 춤을 춘다. 얼쑤!
그때다. 물까마귀 한 마리가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냅다 잡아 광활한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잡은 놈이야 물론 얼싸 좋다 신바람이 났을 터. 곧 잡아먹힐 놈도 봄빛을 가르면서 십리 허공으로 솟구쳐오를 때는 하도 시원해서 엔도르핀이 확, 솟구쳤겠다. 계속 이어지는 사물들의 나열로 다소 밋밋하게 끝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시적 긴장이 아연 극도로 고조되면서 시의 표정에 생기가 확, 돈다. 용을 다 그리고 마지막 눈동자를 찍자마자,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순간이다.
이종문 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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