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장하는 초등생… 속 끓이는 부모

3학년 BB크림·틴트는 기본…문구점서 불량품 쉽게 구입, 부작용 시달려

김정민(41) 씨는 올 초 입술에 빨간색 틴트를 바르는 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와 아침마다 말다툼을 벌였다. 화장이 이르다는 생각에 틴트를 지우고 가라고 설득했지만, 아이는 반 친구 대부분이 틴트를 바른다고 항변했다. 결국 김 씨는 화장을 인정하고 화장품을 어린이날 선물로 알아보고 있다. 김 씨는 "출처도 알 수 없는 틴트를 바르고 있어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을 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화장하는 초등학교 여학생이 늘고 있다.

부모들도 어린이 화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자녀의 고집을 못 꺾다 보니 아예 제대로 된 화장품을 사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

◆BB크림이나 틴트는 '기본'

초등학교 6학년 김모 양은 성인 여성 수준의 화장품을 가지고 있다. 책가방 속에 든 파우치에는 BB크림과 틴트는 물론,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까지 나왔다. 김 양은 "BB크림이나 틴트 정도는 3, 4학년만 돼도 다들 바른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창에도 '초등학생 화장법'을 검색하면 관련 글이 줄줄이 쏟아진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 어울릴 만한 화장법을 추천해주세요',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게 화장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등의 글뿐 아니라 화장법을 시연하는 동영상까지 찾아볼 수 있다.

부모로서는 아이가 화장하는 모습이 썩 곱게 보이지 않는다. 부모 세대에서는 '화장하는 아이=불량한 아이'라는 인식이 강한 때문이다. 서영주(45) 씨는 "올해 6학년인 딸 아이와 화장 때문에 너무 많이 싸운다. '화장한다고 공부 안 하고 나쁜 짓 하는 것 아니다'라는 아이의 말에 어른이 되면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밖엔 할 수 없다"고 했다.

◆검증 안 된 제품 많아

초교 여학생들이 화장에 빠지는 이유는 쉽게 화장품 구입이 가능한 때문이다. 실제 학교 근처의 문구점에서도 쉽게 화장품을 구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주로 구매하는 중저가 화장품 가격은 BB크림의 경우 1만~2만원선, 틴트나 립글로스 등은 5천~1만원선이다. 문구점에서 파는 화장품은 이보다 50%가량 저렴하다. 23일 오후 3시쯤 찾은 수성구 한 초등학교 근처 문구점에서는 2천원대의 틴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화장품 안전기준은 성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어린이가 사용했을 때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문구점에서 파는 화장품은 대부분 검증되지 않거나 성분 표시도 없는 경우가 상당수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인터넷쇼핑몰, 문구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어린이 색조화장품을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8개 브랜드 제품 중 제조성분, 주의사항 등을 지킨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어린이 대상 색조화장품과 관련한 피해사례도 60건에 달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붉은 반점, 발진 등의 부작용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에게 화장품을 사주는 부모도 늘고 있다.

이영임(42) 씨는 "아이가 지난해부터 출처도 모르는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피부에 트러블이 나서 병원을 찾았다. 이후 화장품을 직접 골라주고 깨끗하게 세안하는 등 올바른 화장법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성인보다 약한 피부를 가진 아이들이 화학물질로 이뤄진 색조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피부 트러블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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