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한국 종교계는 질곡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부쩍 강도를 높여오자, 각 종파는 잇따라 굴복했다. 부산과 마산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주기철 목사가 평양 산정현교회로 부임한 것은 1936년 7월이었다. 그는 1938년 8월 일제에 의해 두 번째로 투옥됐다. 과거 '신사참배 반대 결의안'을 주도한 적이 있는 주 목사를 옭아매기 위한 일제의 치밀한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1938년 9월 9일 주 목사가 투옥된 틈을 타 한국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평양에서 열렸다. 친일 목사들에 의해 신사참배가 가결됐다. "나는 하나님께 상소하오"라고 외친 교인은 경찰에 끌려갔다. 일제는 회유와 협박, 고문을 자행하며 주 목사의 의지를 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마침내 교회를 폐쇄시키고 목사직을 박탈한 뒤, 1940년 9월 네 번째로 그를 투옥했다. 주 목사는 감옥에서 "내 영혼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마지막으로 1944년 4월 21일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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