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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자원 봉사, 그 배움의 길에서

유 가 형
유 가 형

1985년 6월 1일 '생명의 전화'의 역사적인 개원식이 있었다. 나는 집에 일이 많은지라 시간 절약을 위해 야간상담 업무를 택했다. 처음엔 후들후들 떨리고 겁이 났다. 저 전화기를 어떻게 잡을까?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전화가 와 고함이라도 치면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는데 다행스럽게도(?)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상담일지에다 '근심 걱정 없는 대구 시민들이여. 행복하소서, 난 갑니다 안녕!'이라고 써놓고 나오는데, 정성덕(전 영남대의료원장) 선생님이 바로 다음 상담 업무 담당자로 오셨다. 상담일지에 적은 것을 보고 얼마나 웃으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몹시 부끄럽다.

자원봉사는 주위와 가족들의 이해가 꼭 필요한 활동이기에, 가족 일이 가장 우선이란 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족 중 한 사람의 반대만 있어도 불화로 이어져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약속 시간을 잘 지켜야 하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내담자(피상담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겸손해야 한다. 또 상대의 비밀을 꼭 지켜 주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다. 상담 후에는 말에 혹 실수가 없었는지 반성도 해 보아야 한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상담이라면 과감하게 선을 그을 줄도 알아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관련 전문기관으로 연결해 주어야 한다. 지금도 상담자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지만, 나는 그 당시 상담시간 외에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정휘 박사님과 오랫동안 각종 사례를 발표하며 공부했다. 인간관계심리, 자살심리, 우울증, 도박, 알코올 중독 등을 다뤘다.

나는 상담실에 나오기 전까지 위장병을 많이 앓았고, 나중엔 십이지장궤양으로 새벽마다 배가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병원에서는 신경성 증상이라며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얼굴에는 기미가 까맣게 생겼다. 내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경청하다 보면, 그것이 내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전화상이 아니라면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크게 울고도 싶었다. 비록 전화 통화지만 같이 울고 서로 위로했다.

내담자들과 같이 느끼고 이야기하면서 스스로의 오해와 편견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편견을 갖고 쉽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가? 깨달음과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상담을 거듭하면서 내 몸에 변화가 왔다. 언제부턴가 속이 아프지 않았다. 어려움을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내 마음도 흙탕물이 가라앉듯 정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보는 눈도 마음도 넓어짐을 느꼈다. 식견이 좀 더 높아졌다고나 할까?

(시인1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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