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비평

군대시절 우리 중대에는 정기 휴가를 갔다 온 사람들은 비디오를 하나 빌려서 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정기 휴가 복귀일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휴가 복귀자가 있는 일요일 저녁은 전 중대원이 비디오 한 편을 보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화목한 시간이었다(대부분은 조그만 꼬투리로도 창고 뒤에 가서 얼차려를 받는 살벌한 내무 생활이 있는 시간이었지만). 내가 첫 휴가를 나갔을 때, 대학교에 있는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복귀할 때 빌려 갈 좋은 비디오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영화가 재미있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내무반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추천한 영화가 하나 있었는데, 무슨 영화제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이 조금 꺼림칙했지만 다수가 좋은 작품이라고 하니 믿고 빌려갔었다. 전 중대원이 기대에 차서 영화를 보는데 예술 영화 특유의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는 롱테이크 기법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 혼자 보았으면 잠들었겠지만 여기저기서 "시방 뭐여.", "언제 벗노?" 이런 소리가 나올 때마다 간이 콩알만 해졌는데 결국 영화가 끝난 후에 나는 바로 대가리 박으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들이나 비평가들, 그 영화를 추천해 준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아마도 군인들이 영화를 보는 안목이 너무나 낮아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으로 돌아가 문학을 전공하며, 미학을 배웠지만 나의 미적 취향은 크게 변하지는 않아서 다른 사람과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비평가들이 칭찬한 영화는 가급적 피하고 오히려 혹평한 영화들을 선택한다. 대신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그전에는 재미가 없던 것들도 이런저런 요소들에 주목해서 보니까 새로운 재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예술 작품을 많이 접하고 많이 알아서 비평을 좀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은 보통의 영화 감상자로서 느끼는 재미는 버리고, 공부를 해야 보이는 새로운 재미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감상자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즐길 수 있는 있다는 것에서 은근히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비평은 현학(衒學)으로 흐르기 쉽다.

이용 씨의 '잊혀진 계절'이 10월만 되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벚꽃이 날리면 사랑을 받는 버스커버스커의 1집 앨범에 대해 한 비평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신인의 패기나 신선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전형성에 의탁해 몸을 사리는, 얌전하게 찍은 여권 사진 같은 음반이라는 인상이다. 노래방 반주처럼 달달한 스트링과 일렉트릭 기타 솔로를 덕지덕지 바른 '여수 밤바다'의 몰개성적 편곡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중략) '잘 만든' 음반이라기보다는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웰 메이드한' 음반일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기획자라면 제네럴한 어트랙션의 센스를 하이라이팅하면서도 스노비즘의 컨벤션에 인클라인드된, 혹은 캐릭터리스틱한 오디언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만들고 싶지 않을까."

아마 이 글을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어떤 작품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려면 기준이 필요한데, 그 기준이라는 것은 엄격하고 객관적인 게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 많이 작용한다. 아마 자신은 신선하고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인데,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는 그렇지 않아서 이런 비난에 가까운 글을 썼을 것이다. 비평가는 비평하려는 작품보다 좋은 것을 만들어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취향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는 일이며, 창작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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