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모악산은 떡시루에서 올라오는 김 같은 산 아지랑이로 익어간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관광단지가 모악산의 들머리이다. 먼저 고은의 시비가 보인다.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 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사람들마저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 외다…." 모악산은 산이 아니고 어머니라는 것이다. 모악산이 성산(聖山)임을 직감으로 느낀다.
첫 번째 나무다리를 건너자, 상학능선 갈림길이 나오고, 대원사 방향 정상까지 2.8㎞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약간 더 오르면 선녀폭포가 있다. 비록 보잘것없는 수량과 높이지만, 안내판의 전설은 흥미롭다. 조금 더 오르면 전주 김씨 세덕비가 길가에 있다. 전주 김씨 시조 김태서 묘의 지기가 발복하여 32대 후손인 북한 김일성이 49년간 집권했으나, 1994년 음력 9월에 사망한다고 예언한 '육관도사'로 알려진 고 손석우가 쓴 '터'가 1993년에 발간됐다. 그가 예언한 날짜와 비슷하게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태서 묘터에 당시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다시 15분쯤 오르면 대원사가 있다. 대원사는 백제 대원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고려시대 5층 석탑도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진묵대사가 중창하고 20년간 수행한 절이다. 이곳 칠성각은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이 크게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유명하다. 강일순이 수도할 때 숙식한 방도 둘러본다. 여기서부터 된비알로 가파른 길을 20여 분 오르면 수왕사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진덕이 창건하고, 조선 선조 때 진묵대사가 석간수를 마시고 수도해서 일명 '물왕이 절' '무량이 절'로 부르다가 수왕사로 바뀌었다. 조금 더 오르자 능선이 나오고 정상까지 힘들지 않다.
모악산 인근 마을에서 기우제를 올리는 무제봉을 지난다. 마침내 KBS 송신소의 계단을 따라 모악산 정상 전망대(793.5m)에 이른다. 1시간 30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사방이 일망무제다. 가없이 펼쳐진 '징게맹경 외애밋들'인 김제 만경평야가 보이고, 북으로 미륵산 계룡산 대둔산 종남산이 보이고, 동으로 성수산 만덕산과 너머로 덕유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남으로 무등산 회문산 강천산, 서로는 내장산 방장산 변산 서해가 눈을 가득 채운다.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모악산은 동쪽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모습 같아서 모악산이라 했다. 호남평야에서 모악산을 보면 마치 어머니가 양팔을 벌려 사방 몇백 리의 너른 들녘을 감싸 안고 있는 모양이다. 영태(靈胎)를 모신 모악산은 백제 유민들의 삶과 애환이 서린 미륵신앙의 텃밭이요. 계룡산과 함께 민중신앙의 성지다. 다시 북봉으로 향하다가 좌측으로 눌연계곡을 끼고 있는 작은 능선을 지나 금산사에 도착한다.
깨어지지 않는 지형인 마름모꼴의 중앙에 있는 금산사에는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다. 1천400여 년의 역사가 있는 백제 불교를 대표하는 큰 절이다. 국보 하나에 보물을 열이나 품었다. 그리고 후백제 왕 견훤이 맏이 신검과 둘째 양검에 의해 미륵전에 감금당한 곳이다. 금산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3층 불전이고 내부는 전체가 툭 터진 통층이다.
안에 있는 미륵장육 삼존불은 주존 미륵존불(11.82m), 양 협시보살(8.79m)인데, 개금을 한 서 있는 불상으로 크기와 웅장함에 놀란다. 미륵은 미래불이다. 미륵은 개혁불, 혁신불, 일하는 부처다. 모든 걸 뒤집어 놓는 부처다. 지금의 법이 다하여 인간세상이 망할 때, 구원의 새 법을 가지고 걸어서 오신다. 연꽃 위에 앉아 예배받는 부처가 아니다. 서서 일하시며 세상을 뜯어고치고 바로잡으신다. 다투고 싸우고 대립하는 사람을 단 한 번의 설법으로 사랑으로 자비로 가득 찬 새사람으로 바꾸신다. 다가오는 세계는 사람이 화합 상생하며 산다. 바로 미륵세계다. 너른 평야로 말미암아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호남이므로 미래를 여는 미륵불교가 성행하였다.
친근하고 소박한 절집과 티 없이 맑아 하늘로 스며들 것 같은 5층 석탑을 보고 발길을 돌린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돌 무지개 문을 지나고, 왕벚나무, 아름드리 전나무 밑을 걷는다. 주차장 가까이 미륵을 모신 작은 절집이 있다. 문을 열어 보니 사람크기의 돌미륵이 있고 발 앞에 수십 개의 촛불이 타고 있다. 저렇게 촛불을 켜는 사람들의 마음을 디디면서 미륵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 예로부터 호남 4경(모악춘경, 변산하경, 내장추경, 백양설경) 중 봄 경치로 유명한 모악산 벚꽃이 만발할 때, 그 꽃등축제 같은 장관을 그려본다. 살아가다가 한 번씩 만나는 행운처럼 다시 한번 걷고 싶은 갈증의 트레킹 길이었다. 귀갓길에 요즈음 각광받는 여행지 전주 한옥마을을 들른다.
김찬일(대구문학인트레킹회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장익헌
※* 트레킹 코스: 완주군 구이면 관리 사무소-대원사-수왕사-모악산 정상-북봉-모악정-금산사-주차장 (당일 시간이 되면 전주 한옥마을을 탐방하면 금상첨화)
*내비게이션 주소: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완주군 모악산 관리사무소(063-290-2752)
*문의처: 모악산 지킴이(010-4167-3011), 김제시 모악산 관리 사무소(063-540-4196)
전주 고속버스터미널(063-277-1572), 한옥마을 관광 안내소(063-282-1330)
*숙박업소: 전주시에는 숙박업소와 음식점이 너무 많아 생략.
*전주의 볼거리: 경기전, 풍남문, 전동성당, 전주향교, 오목대, 한벽당, 남고산성, 풍패지관(전주 객사), 견훤왕궁터, 천주교 순교자 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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