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호 참사 보며 분노" 상인동 가스폭발 20주년

10년 만에 공식 추도식…영남중 학생 등 200여 명 참석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희생자 20주기 추도식이 28일 대구 달서구 학산공원 내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희생자 20주기 추도식이 28일 대구 달서구 학산공원 내 '희생자 위령탑'에서 열린 가운데 한 유가족이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위령비를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kyjmaeil@msnet.co.kr

"우리에게 봄은 아직도 추운 계절이고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101명이 사망한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공식 추도식이 28일 10년 만에 열렸다. 가스사고 희생자 유족회는 2005년 10주기 추도식을 끝으로 공식행사를 열지 않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추도식을 공식적으로 다시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유가족과 사고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영남중학교 학생과 교사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추도식은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살풀이춤을 시작으로 헌시낭독 퍼포먼스,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희생자 101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는 유족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가득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추도식을 마친 유족 30여 명은 추모 공간인 영남중학교 세심관을 찾았다. 1997년 건립한 세심관 추모실 한쪽 벽에는 당시 숨진 교사 1명과 학생 43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정덕규 유족회장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유족들은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분노'를 느꼈다"며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추도식을 하면서 희생자의 억울함을 덮고 사는 것만 같았지만, 이번 공식행사를 통해 지역사회가 안전에 대해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20년 전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애지중지 키운 장남이 가족의 곁을 떠난 날이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영남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바꿔놨다. 그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아들을 가슴에 묻으면서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며 "그때부터 아들이 못다 한 삶을 대신해 아들의 마음과 눈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조심스럽게 막내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첫째 아들이 죽은 지 2년 뒤인 1997년 늦둥이를 낳았다"며 "우연인지 막내가 커가는 모습이 첫째의 어릴 적 모습과 꼭 닮았더라"고 말했다.

자식에 대한 사무침이 커서일까. 이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 가운데 12쌍은 늦둥이를 낳았고 이 가운데 11명이 아들이었다.

처음 70가구로 시작한 유족회는 20년이 지난 지금 22가구로 줄어들었다. 정 회장은 "아픔을 견디다 못해 대구를 떠난 이도 있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 유족회를 나간 이들도 있다"며 "세상을 떠난 유족도 생겨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노경석 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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