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면(赦免)

198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리아스 카네티는 저서 '군중과 권력'에서 "사면은 고도로 집중된 권력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의 표현은 "사형집행 직전에 사면령을 내리는 데서 정점(頂點)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가 사면권의 본질에 대해 이러한 통찰을 갖게 한 원천은 추측건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니콜라이 1세의 사면인 것으로 보인다.

도스토옙스키는 28세 때 사회주의자인 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가 조직한 반정부 서클에 참여했다가 발각돼 동료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집행 직전 황제의 사면장이 도착해 극적으로 죽음을 면한다. 그러나 이는 '페트라셰프스키 그룹'을 포함, 혁명세력을 '순치' 시키려는 연극이었다. 사형수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고 마지막 순간에 살려줌으로써 황제의 힘과 은총을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 '음모'를 알 길이 없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사면이 선사한 '재탄생'에 감격했다.

사면의 속성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의 "사면은 대권 중에서 가장 음흉한 것"이라는 언명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사면을 받은 뒤 4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사회주의자에서 철저한 보수주의자, 군주주의자로 변신했다. 칸트가 말한 '사면권의 음흉함'이 사상적 전향을 이끌어내려는 음모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면 도스토옙스키의 변화는 딱 들어맞는 케이스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노무현정부 때 두 번이나 특별사면을 받은 것을 놓고 여야 간 책임 공방이 치열하다. 서로 '네가 한 것'이라고 떠넘기고 있지만 드러나고 있는 그림은 그게 아니다. 바로 성 전 회장의 특별 사면은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 간의 '정치적 뒷거래'라는 그림이다. 이는 사면권의 남용을 넘어 타락이다.

한 고조 유방은 일등공신 소하(蕭何)가 황제의 사냥터를 백성에게 나눠줘 농사를 짓게 하자고 건의하자 감옥에 가뒀다. 소하가 민심을 얻으려 한다고 의심한 것이다. 그러나 며칠 뒤 소하를 풀어줬다. 그 이유가 걸작이었다. 자신의 옹졸함을 알려 소하의 훌륭함을 드러내려고 하옥했다는 것이다. 낯 간지러운 변명이지만 사면은 명분이 있어야 함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가볍지 않다. "사면제도는 누가 왜 사면권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악법이 될 수도 있고 관용이 될 수도 있다."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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